어느 글에선가 오장칠부라는 단어를 보았다. 이제 핸드폰, 정확하게 스마트폰은 사람의 신체 기관의 일부가 되어서 오장육부가 아닌 오장칠부라는 것이다. 부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눈 뜨고 시간과 메시지를 확인하러 폰을 보고 자기 전에도 본다. 나는 대체로 카톡을 다 무음으로 해 놓고 살지만 간간히 중요한 연락이 있는지 확인한다. 단톡방 메시지 들은 그냥 안 보고 읽음 처리해 버릴 때도 많지만 가끔씩 몰아서 '벽 타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주요 용도는 책을 읽는 것이다. 전자책리더기도 있지만 돈을 주고 구입을 해야 하니 그냥 편하게 바로바로 읽을 수 있는 폰을 조금 더 선호한다. 그래서 일단 화면이 커야 한다. 종이책도 읽지만 매번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서 그냥 폰으로 많이 읽는데 그러다 보니 시력이 예전보다 좀 나빠져서 요새 조금 멀리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사진을 찍기 때문에 화소도 중요하다. 그리고 피아노 연습을 녹음해야 하기 때문에 음질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멀티의 기능을 위주로 활용하고 있고 그래서 정말 폰은 이전의 기본 목적인 통화와 문자메시지의 비율이 현저하게 적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습관화되었는데, 문제는 이제 문자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니 불과 마흔 초반인데 왜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느냐 하시면.... 우선, 손가락이 조금 아프다. 20대처럼 다다다닥 칠 수는 있지만 어쩐지 엄지손가락 관절이 시큰거리는 것 같고 잠깐은 괜찮지만 하다 보면 정말로 손목도 아픈 것 같고 불편하다. 그리고 눈도 침침하다. 대체로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가끔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글자를 읽어야 하거나 노란색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1의 사라짐을 확인하고 재차 연락해야 할 때가 있다. 이게 은근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폰을 들여다보면서 문자를 하고 있으면 내가 왜 이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앉아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그래서 중요하게 대화를 해야 할 때는 컴퓨터로 빠르게 타이핑을 하면서 대화에 집중하고 끝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전화 통화를 그래서 더 선호하지만 지겹게 등장하는 문구인 '현대인의 특성상' 통화가 어려운 때가 많고, 심지어 나와 나이가 같은 내 절친조차 나에게 본인은 텍스트 메시지를 더 선호한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전화 통화도 많이 하지만 우리는 문자를 더 많이 주고받는다.
그렇게 폰을 내 옆자리 리더기로 쓰다 보니 전화 통화 목록은 사실 늘 하는 사람만 한다. 우리 아이들, 주로 딸들, 그리고 일이 있을 때 통화를 해야 하는 경우 정도라서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꼭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오늘 큰맘 먹고 전화를 두 번이나 했다.
첫 통화는 우리 학교 선생님. 1학기에 함께 교원학습공동체까지 하셨는데 갑자기 2학기부터 병가를 쓰셨다. 전혀 내색을 하지 않으셔서 몸이 조금 안 좋으신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랬는데, 병가를 내시고 올해 안에 다시 오실지도 불투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려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해도 되는 것인지, 나는 괜찮지만 혹시 불편하신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자잘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며칠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그러다 오늘 교과실에 갔는데 선생님의 빈자리를 보고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전화를 드리려고 했는데 오후에는 회의가 줄지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집에 가면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고 정신 차려 보면 한밤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놓친 통화가 몇 번이라서 생각났을 때 해야 한다는 마음에 이번 주가 가기 전에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전화드리기를 너무 잘했다. 문자로는 전달이 안 되는 사람 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 선생님이 앞에 계셨으면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랬다면 더 힘드셨겠지. 통화를 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났다. 어쩌면 내년에는 휴직하실 것 같다고 했다. 1학기 마지막 모임에서 함께 그림을 그린 것이 그렇게 마지막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좀 여력이 생기시면 꼭 연락을 달라고 부탁드렸지만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선생님도 나도 안다. 다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
이제 우리 나이는 축하할 일보다 격려하고 위로할 일이 더 많다고 하던 사촌언니 말이 생각이 난다. 나는 극단적인 이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겨 못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쪽이든 아닌 쪽이든. 친한 언니네는 갑자기 이민을 갔다. 학기 초인데 우리 학교 동학년 선생님 두 분이 병가를 쓰셔야 했다. 급작스런 수술과 코로나로. 그렇게 옆자리 동료가 아파서 잠시 직장을 떠날 수도 있고 사정이 생겨서 물리적으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절친의 친구처럼 세상을 뜰 수도 있겠지. 그 친구의 후회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가를 보았다. 전화에 매여 사는 수다쟁이는 아니지만, 통화가 필요한 순간을 미루지 말고 바로바로 통화 버튼을 누를 것. 그렇게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약간은 가벼워진다.
아직도 통화 버튼을 그렇게 쉽게는 또 못 누르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순간에는 망설이지 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