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6만 4천 원짜리 티타임

처음 즐긴 애프터눈티 세트

by 여울

제자 결혼식에 갔다가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 되었던 우리는 평생 절친이 되었고, 마흔 중반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 결혼식에서 밥도 안 먹고 온 이유는 친구랑 밥을 먹기 위해서이다. 2월에 서로 막내들을 데리고 한 번 만난 다음에 지금까지 못 봐서 미리 오늘은 꼭 보자고 약속을 잡아 두었었다. 한 주 미룰까 어쩔까 고민도 했는데 그렇게 미루는 바람에 지금까지 못 본 터라 그냥 보기로 했다.


친구가 일하는 곳 근처에 그라운드 시소라고 있고 성수낙낙이라고 있다고 해서 무작정 네비를 찍고 갔다. 주차를 하고 '성수낙낙'을 물으니 이 건물을 포함한 몇 곳이 다 성수낙낙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처음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TWG Tea 카페. 워낙 여기 차를 좋아해서 구경이라도 해 보자 하고 갔는데 애프터눈티세트가 있었다. 가격은 49000원짜리 2단 티세트와 64000원짜리 3단 티세트 두 가지. 히익. 가격에 둘 다 놀라서 기겁을 하고 돌아서는데 자꾸 눈에 아른 거리는 거다. 밥을 먹자고 식당을 도는데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아마 여기는 주로 주중에 더 활발한 곳인가 보다. 나는 밥을 먹고 차도 마셔야겠다. 친구는 밥을 먹으면 차는 못 마신다. 둘이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밥은 건너고 저 티 세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제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가 문제인데 64000원짜리 세트에는 치아바타 샌드위치가 포함이 되어 있어 식사 대용으로 괜찮겠다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식에서 밥 먹고 올 건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와아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전체가 번쩍번쩍거리는데 또 너무 예쁘다. 딱 아가씨들이 좋아할 분위기라 젊은 여성들이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차는 두 가지를 고를 수 있고 마카롱도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다고 한다. 얼그레이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프렌치 얼그레이를 골랐다. 홍차 중에서 얼그레이를 고르면 항상 후회가 없고 만족스러워서 좋아하는 차이다. 황금빛 번쩍거리는 티 보호대(?)를 착용한 티팟을 각각 받았다. 황금빛 찻물이 가득 찬다. 상큼하면서 그윽한 향이 곱게 올라온다. 클로디드 크림과 홍차잼도 각각 담아서 나온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던 바로 그 애프터눈티세트!!!! 영국에서도 너무 비싸서 먹어보지 못했다던 친구는 귀국 후 첫 월급 기념으로 과감하게 쏘겠다고 했다. 그전에 저 가격이 두 사람 분인 것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들어가더라..... 나도 1인당 6만 4천 원이면 못 사 먹는다고 했다. 빵을 엄청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저만큼 주는데 그 가격은 아니지. 그래서 우리가 딸기 뷔페와 딸기 애프터눈티 세트를 한 번도 못 즐겨봤나 싶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뭔가 특별한 소스를 썼는지 진짜 맛있었고 (미안하지만 배 고픈 내가 두 조각 먹었다), 휘낭시에와 스콘을 반반 갈라서 크림과 잼을 얹어 먹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윽한 차 향기와 함께 즐기다 보니 3층에 있는 밀푀유까지 이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주위를 둘어보니 우리 테이블만 속도가 무지하게 빨랐다. 다른 테이블은 우리보다 먼저 앉아계셨는데 거의 손도 안 대거나 반 정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우리는 밥을 안 먹고 와서 그렇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밥을 먹었어도 빨리 먹었을 것 같다는 것은 추측일 뿐이다.) 마카롱 하나에 11000원인 줄 알고 기절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3개 가격이었다. (그래도 비싼 것 같다만.)


둘이서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 차를 마시다 보니 저 많은 티팟을 둘이서 각각 다 비웠다. 밥을 안 먹어서 더 맛있게 잘 즐긴 것 같다고 둘이서 이야기했다. 평소에 스타벅스 커피 한 잔도 큰맘 먹고 사 먹는 우리인지라 이렇게 비싼 곳은 카페는 고사하고 식당도 잘 안 갔었다. 좋아하는 친구랑 아이들 없이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지난 2월에 우리가 만난 곳은 키자니아였다... 하아...) 2시간은 순식간에 날아갔고 서로 또 각자의 아이를 데리러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TWG 카페에서 차나 식사를 즐기면 그 옆의 가게에서 1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가 봤다. 한 박스에 37천 원씩 하는 차는 분명 카페보다는 쌌지만 선 듯 구입하기에는 할인된 가격이라도 망설여졌다. 둘이서 향만 음미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모처럼의 토요일, 꽉 찼던 지난 한 주를 생각하면 집에서 쉬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좀 쉬면서 몸에 에너지를 채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좋았던 시간을 가졌다. 아끼던 제자를 보고,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서울 전역을 돌면서 운전을 했기에 오른쪽 발목에 살짝 근육통마저 느끼며 돌아오는 길.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는 삶을 정말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