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이 종일 내렸다. 좀 많이 내렸다. 오늘은 자잘하게 거슬리는 일들이 조금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 두 줄로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고 그 옆으로는 한 줄로만 대야 한다. 그런데 꼭 두 줄로 댈 수 있는 공간 앞자리를 막고 차를 대시는 분들이 있다. 한 번은 참다못해서 슬쩍 쪽지를 붙였더니 그분은 다시는 거기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또 한 분은 쪽지를 안 붙였더니 당연하게도 여전히 길을 막고 주차를 하고 계신다. 문제는 그분을 피해서 다른 차가 애매하게 뒷 줄로 나중에 들어가서 주차를 해야 하니 공간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아무튼 그 a b c 자리 중에서 나는 사이에 낀 b 자리에 주차를 했는데 오늘따라 c차가 좀 애매하게 대어 간격이 좁았다. 그랬더니 여유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차를 빼는데 30분이 더 걸렸다. (왜 그리 오래 걸렸냐면 차에 번호가 없어서 교실로 다시 가서 학년과 반을 확인하고 전화를 드리고 선생님이 업무를 마치시는데 십여분 걸린다고 하셔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가야 하는데 정말 집을 지나치는 그 순간까지 집으로 갈까 몇 번을 고민하다 연습을 했다. 이번 주 미니연주회가 아니라면 그냥 집으로 갔을 건데. 확실히 하는 만큼 곡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습을 하다 너무 졸려서 집에 가려는데 선생님이 미니 레슨을 해 주셨다. 레슨도 받았는데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다시 연습을 좀 더 했더니 차 막히는 퇴근 시간이 되어 버렸다.
서둘러 나왔는데, 도로로 나가는 진입로에 경찰차가 서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빠지진 않고 경찰차에 경적을 울릴 용기는 없어서 어쩌나 하고 기다리는데 구급차도 왔다. 구급 대원 4명이 내려서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경찰차로 가 보니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한 모양이다. 이를 어쩌나 싶어 난감하게 있으니 건물 주차 관리하시는 분이 오셔서 도보로 운전해서 저쪽으로 빠지라고 하신다. 겨우겨우 말뚝 사이로 빠져나갔는데, 아뿔싸. 강남순환도로는 이 시간에 막히는 것을 깜빡했다. 그냥 사당역 사거리에서 유턴하는 것이 나았을 것을. 그래도 겨우겨우 나와서 이제 많이 왔다. 내 옆 차선에서 나란히 서 있던 아반떼 한 대가 신호를 보낸다. 좀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오라고 껴 주었다. 그런데 이 차가 그런 차들 중 하나였다. 끼워주면 길 막고 안 가는 차. 앞 차와 간격을 한참 두고 애매하게 가니 뒤에서 따라가는 나는 마음이 초조하다. 차선을 바꾸어 앞지르기에는 비도 오고 차도 너무 많고 난감하다. 그렇잖아도 늦었는데 빨리 가서 저녁밥을 차려야 하는데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거리에 드디어 왔다. 그리고 차들이 서서히 움직여서 나도 옆 차선의 차들과 같이 사거리에 진입했다. 아니... 그런데 이 차가 앞으로 더 안 가는 거다. 나는 그야말로 길을 막은 나쁜 운전사가 되고 말았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가 주면 최소한 차선 하나는 더 확보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앞으로 가지 않는다. 옆 차는 그냥 앞으로 가서 괜찮은데 이 차는 가지 않았다. 횡단보도 바로 앞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신호가 초록불이었을 때 진입했고 차들이 움직이고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계산 실수였다. 사람들이 지나갔고 다시 신호가 바뀌어도 이 차는 앞으로 가지 않았다. 2미터만 가주면 되는데. 정말 얼마나 사방에서 경적이 울려대었는지 모른다. 정말 방법이 없었다. 결국 민폐란 민폐는 잔뜩 끼치고 나서 겨우겨우 움직였다.
이 차는 공교롭게도 거의 집까지 동선이 나와 같았다. 왼쪽 좌회전을 할 때도 얼마나 간격을 두고 천천히 움직이는지 또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중간에 멈추어 길을 막는 불상사는 없었다. 내 뒤로도 몇 대가 왔으니 다행이다. 1차선에서 여전히 간격을 두고 천천히 가길래 2차선으로 옮겼다. 어차피 두 블록 있다 우회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바꾸는 시점에 이 차도 2차선으로 바꾸더니 여전히 서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횡단보도 앞에서 천천히 우회전해서 본인은 들어가고, 뒤 따라가던 나는 신호에 걸렸다. 그 순간 깊은 빡침이란. 유유자적 들어가는 그 차를 보면서 "정말 너무한 거 아냐!!!"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는 끼워주었는데 결과는 이랬다.....
운전을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데 보통은 한두 번으로 끝내서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그런데 내가 오늘 좀 예민했고, 피곤했고, 초조했다. 그래서 넘길 수 있는 것도 넘기지 못하고 상황 판단도 좀 명확하지 못했다. 오늘은 혼자 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깨끗하게 집을 치우고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다. 집에는 늘 누군가가 있으니까 완벽한 고요를 즐길 수는 없다. 생각해 보니 이번 여름에는 혼자만의 여행을 가지 않았다. 작년부터 나 혼자 여행을 방학 때마다 다녀왔는데 그 시간이 참 도움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내'가 되었다. 그렇게 숨을 쉬고 고르고 다시 한 학기를 살았는데, 이번 여름은 짧기도 했고 너무 바빠서 그럴 틈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2학기도 마구 달리고 있고. 이대로라면 한 번도 겪어본 적은 없지만 번아웃이 올까? 집에 와서 저녁을 만들어주고는 나는 잠을 잤다. 몸이 물먹은 스펀지처럼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서 낮잠을 잘 때는 항상 그냥 방바닥에서 잔다. 오래 잠들지 않고 빨리 깨기 위함인데 오늘은 아이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겨우겨우 일어나서 같이 책을 읽고 과일과 팝콘을 준비해 주었다. 이쯤 되면 활발한 나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오늘은 정말 쉬어야 하는 수요일인가 보다. 다음 주 명절이 시작되면 쉴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은 양가 모두 우리 집에 오셔야 하니 제일 분주한 시간이다. 부디 이대로 내년 1월까지 잘 버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