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앞으로 흐른다

by 여울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 때로는 한 권 혹은 한 시리즈를 집중해서 읽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 편이다. 아이들과 읽는 책, 혼자서 읽는 책, 독서 모임 식구들과 읽는 책 등등 다양하다. 어제 읽은 책에는 히브리 사가들의 사관이 나왔다. 대표적인 헬라 사가인 헤로도토스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라고 말했고, 사실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역사를 보면 묘한 형태로 반복이 된다. 큰 흐름인 역사도 그렇지만 작게는 패션의 흐름도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또 반복이 된다고 해서 예전에 있었던 옷들을 꺼내 보면 현재와 미묘하게 달라서 막상 입으면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와이드팬츠를 좋아해서 몇 벌 가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작년 십여 년 만에 와이드팬츠의 유행이 다시 시작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꺼냈다. 그런데 아뿔싸. 허리의 길이가 다른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와이드팬츠는 하이웨스트로 허리선까지 높게 올라오는데 내가 가진 것들은 골반에 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던 옷들이고 천도 좋아서 차마 버리진 못하고 그냥 가끔씩 입었다. 상의 블라우스나 티를 약간 길게 내려오는 것을 입으면 아주 큰 차이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데 형태와 방법을 바꾸어서 반복이 된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것 같지만 또 그래서 예측이 어렵다. 반면에 히브리 사가들은 역사는 반복이 되기보다는 하나의 선으로 앞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고 했다. 여기서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분명히 예전에 읽었던 내용인데 유독 새롭게 다가온 것은 아마도 내가 고민하는 삶의 본질의 방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까 싶었다.


나는 내 삶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여겼지만, 정말 필요한 나의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 이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부끄럽지만 정말 그렇다. 나는 나보다 키 큰 사람을 원했고, 부모님의 신앙적 기준을 맞춰줄 수 있는 신앙 좋은 남자를 원했다. 직업과 돈은 상관없다고 여겼는데, 혼자서도 자신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무지와 교만은 결혼 후 큰 걸림돌로 다가왔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소설 한 권 이상 되는 분량으로 쓸 수 있겠지만 나 역시 그 대상에 포함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 번 결혼이라는 연을 맺고 나니 이제 와서 걷어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얽혀있어서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서로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순하게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고 결정을 내리기는 정말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남편이 곁에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조해진다. 그리고 아이들도 나만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내 감정이 투사된 것인지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랑이 밤에 일을 하는 일이 잦아서 저녁을 먹고 나가서 아이들이 잠에 들면 들어오는데, 나는 그 시간, 그러니까 아이들과 나만 있는 시간이 정말 너무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좋다.


우리는 그 시간에 함께 팝콘도 튀겨 먹고, 이야기도 하고, 청소와 정리도 하고 책도 읽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봐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그에게 자주 혼이 났다. 정리를 잘 못해서, 음식 순서를 지키지 못해서... 이유를 따지자면 하찮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적어 보자니 내가 쪼잔한 것 같다. 그리고 뭔가를 부탁하는 것도 어려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힘들어서 부탁을 하면 "우리 엄마도 한 번도 안 시켰다."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들고나가는 것은 남자로서의 면이 안 선다면서 싫어했고, "결혼하면 아내가 다 챙겨줄 줄 알았는데, 결혼해도 여전히 내가 해야 하고 오히려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이야기했고, 그가 좋아하는 버터가 떨어지면 미리미리 사놓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싫은 소리를 했다. "비싼데 꼭 버터가 있어야 해?"라고 물으면 버터 없이는 빵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햄과 치즈, 버터와 커피, 계란과 기본적인 야채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운전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하는 욕은 들을 때마다 무서워서 부탁했지만 그도 습관인지 잘 고치질 못했다. 결혼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결혼 후에는 운전 중 욕하는 모습은 일상이었다. 친정아버지는 일평생 다른 사람의 욕을 하신 적이 없고 정말 제일 나쁜 욕이 "아니 저 사람이! 저렇게 하면 안 되지." 정도였다. 화내지 말라고 하면 화내는 게 아니라 목소리가 큰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큰 목소리를 들으면 공포로 몸이 굳는데 그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돈이고 명예고 큰 상관은 없었다. 만약 그가 나를 정말 자기 몸보다 아니 자기 몸처럼 아끼고 나를 우선해 주었다면, 그랬으면 그가 비정규직으로 소득이 거의 없다시피 했어도, 시부모님과 그렇게 힘들게 있었어도 다 괜찮을 것이다. 유일하게 우리를 묶어 주었던 것이 신앙인데, 이제는 그것조차 동일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사이에 남은 것은 신뢰가 아닌 의무일 뿐이다. 그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한다고 그 감정이 지속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사랑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섭다. 결혼하고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조금만 참고 지나가면, 내가 나중에 얼마나 잘해 줄 건데."였다. 큰 행사를 앞두고 항상 신경이 예민해져서 내게 화를 많이 내거나 트집을 잡았는데 몇 번 참다가 나도 한계가 있어서 화를 내면 늘 하는 말이 지금만 잠깐 참고 넘기면 되는데 그걸 못하냐는 것이었다. 바보 같이 그때는 참지 못하는 나를 탓했다. 그래... 왜 나는 이렇게 인내심이 부족해서 참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십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돌이켜보니 그는 내게 자신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원한 거였다. 자신의 감정을 다 받아주고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면 해결이 되는. 그렇게 십오 년이 흐르는 동안 그의 부모님과 그는 그렇게 나를 상처 입혔다. 차라리 어떤 범죄를 저지르거나 바람을 피우거나 하는 유책 사유가 확실하다면 좋을 텐데, 경제적 무능과 시부모의 압박,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치사해 보이는 자잘한 사건들 뿐이라 나는 다 나를 탓했다. 내가 좀 더 돈을 벌지 못해서, 그를 더 뒷바라지하지 못해서, 그리고 다단계 물품 구입을 종용하는 시부모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해서, 그리고 이해심 있게 모든 것을 넘기지 못해서. 이제는 볼 때마다 무섭고 나도 모르게 움찔움찔 움직이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있고 함께 교회를 다니는 동생 부부는 담임목사와 사모이다. 얼마나 많은 관계들이 복잡하게 매여있는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당분간 내가 하던 일들을 좀 줄이고 아이들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는 되풀이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택을 다시 해도 좋은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니다.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의 결과대로 길게 이어지는 과정. 지금도 앞으로도 이어지는 나의 삶은 한 번 가면 다시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빠 없는 아이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 노력하고 있지만 얼마나 나를 지키면서 서서 갈 수 있을지 그건 정말 모르겠다. 바라건대 부디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결과로, 모두를 온전히 세울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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