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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04. 2023

왼손은 규칙적이라는 사실

쇼팽의 녹턴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48-1번은 늘 쳐 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악보는 건드려보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는데, 엉겁결에 새로운 곡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겁이 났다. 앞부분이야 그럭저럭 악보 읽기가 어렵지 않다고 해도 뒷부분의 3대 4 폴리 부분은 어째야 좋을지 감도 오지 않았고 왼손의 반주는 지저분해지기 십상이라 이게 잘 한 선택인지 어쩐지 모르겠다 싶었다. 


어제 처음으로 잠깐 선생님이 악보 본 것을 봐주시는데 박자에 맞추는 연습을 더해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 왼손은 철저하게 맞춰야 한다고. 모짜르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 왼손은 정확하게 박자를 좇아가지만 오른손은 한 없이 자유롭습니다." 그러니까 모짜르트의 뒤를 이은 다른 작곡가들도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유로운 것 같아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박자선이 있는 것이라고. 그래야 흔들림이 없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다른 녹턴들도 그랬다. 오른손은 17음 18음 19음씩 자유롭게 펼쳐져도 왼손은 항상 정확하게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 너에게 자유를 선사하지만 그렇다고 균형감없이 마구 날뛰는 방종은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왼손의 정확한 박자는 중요한 것이다. 


어제오늘 좀 많이 아팠다. 운동을 하면서 많이 건강해져서 환절기도 큰 무리 없이 지나갔는데 새로 시작한 운동이랑 겹쳐서 그런지 조금씩 새로운 근육통이 있다가 된통 제대로 아프다. 돌이켜보니 작년에 필라테스를 시작할 때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몸살처럼 쓰러질 듯 아팠던 것 같다. 그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아픈 것도 사라졌는데, 이번에 새로 시작한 운동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적응하는데 시간이 역시 필요하구나 싶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잠을 좀 잤다. 마침 아이들은 학원에 갔고, 집에 잠깐 들렀던 딸들은 잠에 취한 나와 눈을 마주치긴 했는데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나갔다. 비가 창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눈을 떴다. 베란다 창문을 닫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워 창문을 닫고 나니 다시 잠들기 모호해졌다.


시간이 이대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 아까운데, 그렇다고 뭔가를 집중해서 할 컨디션은 아니다. 이대로 무리하면 다시 아플 것 같아서 엉망이 된 집도 그대로 놔두고 그냥 조용히 움직임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오늘의 늘어짐, 오늘의 풀어짐은 다시 균형 잡힌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복의 시간이다. 그렇게 잤는데도 다시 몸이 잠을 잘 것을 호소하는 것을 보니 하루만 더 쉬어야겠다. 제발 내일은 원래로. 그래서 왼손의 규칙성을 느껴보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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