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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22. 2023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냥 나오는 것은 없다

슈베르트는 어루만지듯이, 쇼팽은 오히려 박자를 철저하게

피아노의 시인. 누구나 들으면 아는 익숙하고 감미로운 곡들을 작곡해 낸 낭만시대 작곡가의 대명사.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도 아름답지만 쇼팽의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는 것이 지금까지 잘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전공자들도 그렇겠지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의 로망은 쇼팽의 발라드와 함께 소나타, 수케르쵸, 폴로네이즈, 즉흥 환상곡은 물론이거니와 녹턴과 왈츠 등등 그의 음악들을 연주하는 것이다. 다른 작곡가들도 에뛰드를 많이 남겼지만 쇼팽의 에뛰드만큼 많이 연주되고 많이 즐겨 듣는 곡도 많지 않다. 20대 때에는 겁도 없이 에뛰드를 많이 공부했고, 그리고 이어서 소나타도 두 곡 모두, 발라드도 2곡, 왈츠와 녹턴은 그냥 초견으로 악보를 보면서 놀았던 것 같다. 그의 음악들은 화성적으로도 너무 풍부해서 조금 서툴러도 스스로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히기 딱 좋았다. 수없이 틀리는 부분과 어려워 빠트리는 부분은 상상력으로 대충 메꾸면서 말이다. (ㅡ.ㅡ)


그러다 작년에 왈츠 두 곡을 공부하고 올해는 녹턴 48-1번을 공부하게 되었다. 낭만시대의 음악이니 내 마음대로 루바토를 해도 될 것 같고 박자도 자유롭게 기분대로 느려졌다 빨라졌다는 해도 허락될 것 같았다. 그래서 보통 하는 메트로놈으로 박자 감각도 잡지 않고 대강 악보를 읽어 갔다. 듣자마자 바로 하시는 말씀이 "쇼팽은 박자가 아주 정확해야 해요."였다. 특히 왼손은 그야말로 박자가 아주 철저하다고 했다. 깜짝 놀라는 마음올 그동안 나름 악보를 읽어보고 연습을 했던 쇼팽의 녹턴 악보들을 생각해 봤다. 


오른손은 왼손이 여섯 개의 음을 누르는 동안 11개, 7개, 20개 등등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왼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 마무리 부분만 제외하면 8분 음표가 여섯 개씩 묶여진 구성으로 동일한 패턴으로 정말 칼 같이 일정하다. 2번 악보도 마찬가지로 왼손 패턴은 한결같다. 


그래서 더 쉬운 것 같지만 더 어렵다.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서 딱딱 치면 되는데, 선율이 한없이 아름다우니 나도 모르게 내 맘대로 자꾸 속도가 오가는 것을 발견하고 지금 정말 철저하게 박자대로 가려고 노력 중이다. 반면에 슈베르트 역시 박자는 중요하지만 터치가 달라진다고 하셨다. "슈베르트는 가곡을 많이 작곡한 사람이기 때문에 피아노 선율도 노래하듯이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 많아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건반을 쓰다듬는 모양을 보여주셨다. 요새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 D.840을 같이 연습하는 중인데 나는 모짜르트처럼 쳐 갔다. 정확한 박자를 맞춰서 스타카토와 붓점과 당김음을 열심히 살려서. 그러면 춤곡처럼 경쾌해진다고.... 도입부부터 속삭이듯이 건반을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고. "우와 굉장히 에로틱하네요." 선생님은 약간 당황하셨다. 하하하.


이 곡은 (나는 보지 않았지만) 드라마 밀회에서도 나와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평생의 사랑'이라고 했던 카롤리네 에스테르하지에게 헌정한 곡이기도 하다. 젊고 아름다운 귀족 여인에 대한 병들고 가난한 무명 작곡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는 서로의 손가락이 스치면서 서로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는 곡이라고 했다. 이런 곡을 나는 아주 씩씩하게 연습해 갔으니.....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이 선율을 듣고 있으면 간절한 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nzOtB6fJhiw


마흔이 넘어 배우는 피아노. 나는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배우고 있다. 손가락과 손목의 움직임, 페달을 어떻게 밟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테크닉은 물론이거니와 작곡가마다 다른 그 성향과 느낌을 음악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처럼 알아가는 중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자만에 차서 음악을 대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는지 깨닫고 머리를 숙이게 된다. 이렇게 들으니 그동안 무심결에 듣고 흘렸던 전문 연주자들의 음악이 더 새롭게 다가오고 보이지 않는 그들의 손가락과 발과 몸의 움직임이 음악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어떻게 진행이 될지 그려보게 된다. 하나하나 치밀하게 연구하고 계산하고 표현하고자 노력한 끝에 나오는 음악들. 음 하나하나 그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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