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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16. 2023

오늘 급식은 탕후루!입니다.

반짝반짝 땡글땡글, 윤이 도르르 흐르는, 색감도 찬란한 '요즘' 간식의 중심은 탕후루이다. 작년까진 가끔씩 아이들이 탕후루 이야기를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눈엔 그저 끈적끈적해 보이는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설탕코팅을 입힌 과일 꼬치가 왜 그리 인기가 많은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6학년 담임이 되면서 아이들의 일기장을 읽을 때면 2주에 한 번은 탕후루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등장하는 필수코스는 탕후루를 먹었다는 것이었고 집에서 할 일이 없어 탕후루를 만들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 화상을 입었다는 이야기, 실패해서 다음부터는 그냥 사 먹기로 했다는 이야기 등등이 이어졌다. 하도 많이 나와서 성공담과 실패담은 누구의 이야기인지 이제 구분도 가지 않을 지경이 되었다.


시월의 어느 날, 내 생일날 샤로수길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는 가족들에게 한턱을 냈다. 탕후루로. 8시 정도 되는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 탕후루 가게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이미 매진된 품목도 좀 있었다. 주말 알바를 구하고 있으며 시급 12000원이라는 쪽지도 크게 붙여져 있었다. 탕후루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나는 제일 작은 블루베리 꼬치를 골랐다. 아이들과 교환을 해서 샤인 머스켓도 하나 먹어보았다. 끈적이지 않았고 바삭했으며 생각보다 달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두 알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못 먹겠더라. 결국 남은 블루베리들은 아이들 입으로 차례차례 들어갔다. 인기가 있는 이유는 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못 잊어 탕후루를 계속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닌 것을 보니 나는 나이가 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월요일. 급식 메뉴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이다. 가서 보면 될 것을 굳이 메뉴판을 월초에 확인하고 주초에 확인하고 아침 등교하면서부터 쉬는 시간마다 확인하고 급식실 가기 직전에도 확인한다. 월이 바뀌는 시점에는 급식 메뉴판을 꼭 출력해서 걸어두어야 한다. 이렇게 몇 달을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도 이젠 슬슬 급식 메뉴가 궁금해진다. 교실 저쪽까지 가서 볼 시간은 없어서 그냥 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꼭 알려준다.


"선생님! 오늘은 급식이 정말 먹을 게 없어요."

"그래? 뭐가 있는데?"

"잡곡밥이랑요 순두부찌개에 김치랑 알감자 조림, 멸치 볶음, 시금치 무침이에요."

"아.... 그래. 고기가 없구나."


그때 재치만점 ㅇㅂ이가 쓰윽 들여다보더니 외친다.

"여러분! 오늘 급식은 알감자 탕후루와 멸치 탕후루입니다!"


아.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너 말이 맞다. 둘 다 달콤하게 졸인 반찬들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탕후루 맞지 뭐. 덕분에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별로 먹지도 않는 알감자 조림과 멸치 볶음을 조금 더 담았다. 급식판을 들고 자리에 앉아 음식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멸치 볶음에 들어있는 잣을 함께 먹어 보았다. 의외로 괜찮았다. 아몬드나 호두와는 다른 깊고 고소한 잣 특유의 맛과 식감이 멸치와 부드럽게 어우러져 자꾸 손이 갔다. 결국 멸치만 남았는데 멸치도 조금 더 먹었다. 알감자도 보통은 하나만 먹는데 4개는 먹은 듯싶다. 평소보다 조금 더 먹어서 배가 빵빵하다. 이제 멸치조림을 보면 저절로 탕후루가 생각나겠다. 멸치 탕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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