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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Oct 20. 2023

학부모 상담 주간 마지막 날 아팠습니다

6학년은 별로 신청하지 않으실 거야...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절반에 가까운 학부모님들이 학부모 상담을 신청하셨다. 평소에도 자주 하시던 분들은 이번에는 빠지시기도 하고 하시기도 했다. 학부모 상담은 늘 긴장이 되는 일이다. 칭찬할 것이 많은 아이도, 조금 더 부탁의 말씀을 드려야 하는 아이도 그렇다. 사실은 후자가 더 그렇긴 하다. 24명의 아이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빛깔로 섞여 있는지 학교는 늘 조용한 순간이 없다. 그리고 나는 또 아이들의 그 다양한 색들을 좋아한다. 동일한 색과 형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 얼마나 심심하겠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며 함께 해야 하는 순간에는 호흡을 맞춰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기 - 놀랍게도 6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핑계로는 사물함에서 뭔가를 가져와야 한다거나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거나 물건을 떨어뜨렸는데 멀리까지 굴러갔다는 등 정말 다양한데 그다음이 문제다. 오는 길에 혹은 가는 길에 다른 친구 자리로 쓱 가는 것이다. 그 아이가 반응을 하던 하지 않든 간에 뭘 하는지 구경을 하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는데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변 아이들까지 주의가 소란해진다. 


물건 던지지 않기 - 물병을 빙글빙글 돌려서 받는 것이 대표적이고 교실에 있는 공을 꺼내와서 던지거나 굴린다. 공을 아무리 숨겨도 계속 꺼내오거나 가져와서 공을 굴리고 그 가운데 맞는 아이들이 나오기도 하고 나도 같이 던지겠다는 소란이 일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뒤돌아 보지 않기 - 의자를 아예 비스듬히 45도 정도 되는 각도로 돌려서 앉는 아이들이 있다. 이 각도로 돌려 앉으면 내 옆의 짝꿍, 뒷자리에 있는 다른 두 아이까지 모두 커버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수다모드를 시작부터 장착하고 있으니 본인의 일에 집중을 잘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아이들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관심사에 골몰하고 있으니 좀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 외에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악보나 학습지를 수시로 분실하는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집에 가져간 교과서를 몇 주씩 가져오지 않고, 주말에 세탁해 오라고 보낸 실내화는 몇 주째 집에 고이 보관되어 있어 자신의 발과 양말로 교실 바닥을 청소해 주는 경우 등등 자잘한 것들이 너무 많다. 이런 것들을 다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런 부분을 과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도 헷갈린다. 말씀을 드리면 사소한 것을 일러바치는 치사한 교사가 되는 것 같고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있자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다. 부모님께서 먼저 "저희 아이가 ADHD가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면 사실 너무 감사하다. 정말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학부모 상담을 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끝났다. 굳이 상담을 오시지 않아도 되었는데 아이의 공부 방향성이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신 분들도 좀 있었다. 학부모 상담 때 학부모님이 어느 정도 말을 꺼내 주시면 대화가 또 편하게 흘러가는데, 정말 대답이 단답형이시면 나도 좀 어렵다. 어제는 어머니도 함께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30분의 대화 시간이 즐겁고 아이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또 학교에서의 생활 모습이나 필요한 부분을 편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귀가 멍했다. 중이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속에 있는 것처럼 멍하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수업이 되겠나 싶을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상담만 아니면 그냥 조퇴를 썼을 텐데, 일부러 직장에 반차를 쓰고 나오실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어 정말 필사적으로 버텼다. 


거기에 오늘은 좀 더 신경과 집중을 요하는 상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느린 아이. 어머니도 아이의 성향을 알고 본인과 맞지 않아 힘들다며 눈물을 살짝 비추셨다. 우리 ㅎㅇ는 예쁜데 성향이 참 느렸다. 항상 dreamy 하다고 해야 할까.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가 현실 세계로 오는 타이밍이 늦고, 한 과정에서 다른 과정을 넘어갈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안 갈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더 이상 안 될 때 아차 하고 가는데 그러다 보니 완성 속도가 느리고 완성을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친구 관계도 좀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초등학생 때 좀 그런 경향이 있었다. 책만 들여다 보고 친구들은 사귀고 싶지만 딱히 절실하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 속에서 푹 빠져 있다가 아이코 싶어서 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 동안 어느 정도 현실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고등학교 때는 또 달라질 수 있다. ㅎㅇ는 책도 좋아하고 도전이 주어지면 또 해낼 수 있는 아이라서 기본 생활 습관을 조금 더 잡아가면서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그다음이 더 큰 일이었다. 지금 상담이 시급한 한 아이 어머니는 아예 신청도 안 하셨는데 다음 주라도 전화를 먼저 드려야 하나 좀 고민이다. 그 아이의 절친인 ㅁㅎ이는 참 귀여운 아이다. 마음이 착하고 섬세한데 성격이 너무 느긋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당면의 과제보다는 친구랑 수다를 떠는 것이 더 즐겁다. 문제는 친구는 수다를 떨면서도 어느 정도 과제를 완성해 오는데 ㅁㅎ이는 그대로 멈춰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 못하면 남아서 해야 한다고 하니 안색이 안 좋아진다. 본인이 다음날 아침 일찍 해 오겠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두 의문을 표했다. 수업 시작 1분 전에 헐레벌떡 도착하는 네가 어떻게 아침 일찍 와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하고 보냈더니 정말 다음날 아침 일찍 와서 과제를 아주 잘해놓았다. 그때 약간의 배신감 마저 든 것이 학교에 일찍 올 수도 있었고, 이렇게 완성도 있게 제시간에 끝낼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과정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그 나이 대의 아이들에게는 은근히 도전이 되는 과제들이 많이 포함이 되어 있다. 단순 계산을 넘어서 사물의 형과 태를 분석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수학, 다양한 도구에 적응해 가며 원하는 것을 본질을 반영하면서 창조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미술, 인내심과 집중력과 소근육 사용이 필수적인 실과의 바느질이나 공예 과정 등등. 논설문을 공부하면서 자료의 출처를 어떻게 활용해서 근거를 뒷받침해야 하는지 다섯 시간을 배웠어도 정작 초안에는 이런 부분이 쏘옥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수학 문제를 다 풀 수 있다고 초등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닌데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이 과정은 쉬우니 어느 정도하고 상위 과정의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자칫하면 아이의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도 상처가 될 수 있는데, 어떻게 전달을 잘해야 할까. 다행히 어머님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나는 ㅁㅎ이의 맡은 일에 대해서 잘하려는 태도와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도 말씀드리며 상담을 마칠 수 있었다. (무려 40분간.... 다른 분들 보다 좀 더 길었다...) 


이렇게 상담을 4시 50분까지 마치고 나니 놀랍게도 좀 덜 아팠다. 여전히 귀는 멍멍하지만 아침만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옆반 선생님은 스트레스성 난청일 수 있다고 하셨다. 열도 없고 통증도 없고 귀만 멍멍한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있으니 이비인후과에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 보니 전화를 해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말을 고르고 고르고 있었고, 아이의 성적 자료와 상담 자료들을 모두 꺼내놓고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디 일주일간 오후를 모두 쏟아붓고 출장을 다녀와서도 다시 야간 상담을 했던 그 과정과 노력들이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아 끝나서 너무 좋다!!! (물론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고 이제 동료장학과 중입배정과 영어자료 제작 등등 많고 많은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한 고비는 넘겼다.) 아이들과 집을 치우고 쉬기만 하면 되는 평화로운 금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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