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민감한 주제다. 아니 많이 민감한 주제다. 예전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하나씩 읽으면서 괜찮은지 아닌지 대답해 보라고.
우리 동네에 흑인이 산다.
우리 아파트에 흑인이 산다.
우리 옆집에 흑인이 산다.
범위는 점차 좁혀져서 친척 중 누군가가 흑인과 결혼한다. 그다음은 내 딸이 흑인과 결혼한다였던가....
그 질문에 대해서 나는 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난 딱히 차별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 책을 읽으면서 놓쳤던 질문들 몇몇이 마음에 맴돌았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당연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내 외국인 친구는 외롭다고 했다. 외모가 비슷한 한국계 외국인들은 외모적인 차별은 덜 하지만 심지어 백인인 친구조차 이유 없는 적대감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양키 고홈이라는 말과 함께) 공격을 받아 척추를 심하게 다쳐 결국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외국인 친구들에게서 듣는 차별이야기는 생각보다 많다. 나는 전혀 예상도 못한 부분에서 차별이 존재한다. 외국인들에게는 친절할 것 같지만 '단일민족'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다양한 다른 사회의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한다. 한국은 이제 정말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가 아니라고.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딱 하나만 빼고는 사실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라고. 그 하나는 아직 한국말에 서투르다는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 갔을 때 당연히 영어에 서투를 것이다. 아무리 한국에서 영어를 잘 배웠어도 현지에서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란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이 길게 필요할 뿐이다.
조선말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 그리고 지금의 다문화시대까지. 각 시대별로 면면한 과제들의 무게는 컸다. 그리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흐름도 이해는 한다. 그래서 이 세계화 시대의 과제가 더 낯설고 난해할 수는 있겠다. 하나로 뭉쳐서 이겨내면 되었던 과거의 과제들이 아니라 이제는 다양성과 낯섦을 포용해야 과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반 이상은 새로 쓰고 반 이상은 빼 버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성소수자 문제는 내가 쉽게 언급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워딩'에 신중하고 싶었다. 나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그래도 넓게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느낀 차별들, 하고 있는 차별들, 인지하지도 못해서 그래서 차별인 것들이 여기저기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고 더 겸손해야 하고 더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