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서 문득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뜻대로 자녀를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았다.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세 가지 있었다.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 부모님께 아무리 반항을 해도 바뀌지 않았고, 남편 역시 싸우고 풀어지기를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았고, 제일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바꾸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과거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은 기본으로 오시고 많게는 한 달의 3분의 2 가까이 시간을 함께 보내기를 원하시고 그 이외의 수많은 것(지금도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돈이 없어 전세에서 월세로 옮기고 은행대출을 상환하려고 했을 때 은행 상환은 좀 미루고 그 돈의 일부를 달라고 하셨던 시아버님- 기어코 가져가셨다-과 이자를 내줄 테니 내 이름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돈을 달라고 하셨던 시어머님이다)을 원하시는 시부모님을 두고 남편에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효도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계속 너무 많이 가져가시면 나중엔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다."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나의 절규와 호소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혼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도 심각성을 몰랐다고 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될 때도 "그렇게 힘들면 제대로 이야기를 했었어야지."라는 대답이 왔다. 내가 아무리 호소를 했어도 그의 마음에는 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마는 정도로 넘겼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서로 바꿀 수 없는 지경에 왔으니 그만하자고 했을 때에야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내가 울면서 하는 호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절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화난 표정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모든 사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남편이라고 해서 아내라고 해서, 부모와 자식이라고 해서 같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책 며느리 사표에는 그렇게 비슷한 과정에 서 있던 한 작가님이 어떻게 이 과정을 겪어 나왔고, 그 안에서 나를 바로 바라보는 법을 깨닫게 되었는지, 치유하게 되었고 남을 도와주게 되었는지가 적혀 있었다. 단순하게 삶의 이야기로만 생각을 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깊어져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못 마땅하게 여기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그의 일에 딱히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편이라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리 소수의 인원이라고 있겠지 싶다. 특히 가까이 있는 남편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 TV를 날마다 틀어놓는 것이 제일 싫었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집안일을 부탁해야 겨우 하는 것도 너무 불편했고, 우리 가정의 일에 그의 부모님이 우선이 되는 것도 못 견디게 힘들었다. 나는 TV를 안 보는 사람이라서 그 소음도 힘들었는데 아이들마저 TV를 즐겨 보게 되는 것과 그 앞에서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더더 싫어서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나는 항상 뭔가 성장을 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렇게 TV나 보면서 책은 한 권도 읽지 않고 성장이 멈춰 있는 사람이 내 배우자라는 것도 싫었다. 오늘 일이 있어서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내가 왜 뭔가를 항상 배우려고 하고 항상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일들을 통해서 스트레스와 쌓인 것들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것이 TV라고 했다. 정말 재미있다기보다는 그냥 보면서 마음에 묵은 것들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사람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이제 겨우 마흔 좀 넘게 살았지만, 삶이 참 스펙터클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은 결혼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서 정말 친한 분 말처럼 과거로 가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낫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고 해도 놓을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없는 삶은 정말 상상을 못 하겠다. 아침부터 야구 시합에 따라가느라 주말의 단잠과 한가로운 하루를 포기하더라도, 밤잠을 설치며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고생을 하더라도, 말 안 듣고 사납게 말하는 저 말하는 습관 때문에 고민이 되더라도,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아이의 진로에 제일 잘 맞는 길을 찾아줄 수 있을까 머리가 아프더라도, 사랑하는 네 명의 아이들 없이 내 삶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내 삶의 의지가 강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이 분명해서 집안일과 육아에만 매몰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밤잠을 줄여서라도 내 시간을 가져야 되는 타입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자라온 엄마로서의 시간도 나의 시간이기 때문이고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그 세 가지는 사실 바꾸면 안 되는 것이다. 바꿀 수 없다기보다는 내 입맛대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일방적으로 맞추어 가면서 희생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하지만 변화할 수는 있다. 나의 시선이 깊어지는데, 그 시선은 나를 향하고, 그렇게 그 변화된 시선으로 정말 필요한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용기.
그래서 이제는 그 기도가 좀 이해가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은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라는 그 기도.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분별하여 시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과 결단성. 그것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