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Sep 06. 2023

밥이 사랑인 이유

H마트에서 울다 1

Food was how my mother expressed her love. No matter how critical or how cruel she could seem - constantaly pushing me to meet her intratactable expectations - I could always feel her affection radiating from the lunches she packed and the meals she prepared for me just the way I liked them.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음식이었다. 엄마의 상호작용하는 기대에 부응하도록 나를 끊임없이 압박하는 우리 엄마가 비평적으로 보이든 잔인하게 보이든 상관없이 나는 항상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준비한 식사와 싸 준 점심 도시락에서 엄마의 빛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요리를 잘한다. 잘한다는 것이 정말 엄청나게 고퀄의 요리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먹을만하게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썩 괜찮은 닭볶음탕이나 유린기 이런 것들을 금방금방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요리가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도시락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끔씩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도시락을 싸서 보내야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도 마찬가지이고. 처음에는 요리책과 인터넷에서 본 그 화려한 형형색색의 도시락을 나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포켓몬 도시락, 헬로키티 도시락 등등등... 캐릭터 도시락이 아니더라도 기형학적인 무늬의 김밥과 눈코입이 달린 문어 소시지에 예쁘게 깎은 사과는 기본이었다.


야심 차게 도시락 만들기에 돌입한 그날 아침. 나는 좌절에 빠졌다. 일단 문어 소시지부터가 쉽지 않았다. 비엔나소시지로 문어 다리 8개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정교한 칼집은 장인의 솜씨였던 것이다. 내 비루한 칼질로는 다리 8개는커녕 4개도 힘들었고 그나마도 다리 굵기가 다르다 못해 어떤 다리는 잘라지기도 했다. 그리고.... 눈코입을 달아줄 검은 깨나 양귀비 씨는 따로 사자니 돈이 아까워서 붙여 줄 수가 없었다. 결국 문어는 포기하고 그냥 칼집을 내어서 구워서 넣어주었다. 김밥은.... 분명 예습할 때는 알록달록 무늬 만들기가 쉬워 보였으나 그대로 하니까 정말 이상했다. 그리고 맛도 없었다. 무난하게 단무지 당근 계란지단 햄과 시금치만 들어가도 아주아주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큰 아이 밑으로 동생 둘이 더 있을 때고 거기에 임신한 상태여서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나니 겨우겨우 도시락 하나를 쌌고, 그 뒤로 두어 번 더 시도를 했던가 안 했던가. 아이들은 그냥 주먹밥에 소시지를 구워서 넣어주는 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 가끔은 유부초밥. 아마 도시락에 힘겨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눈치채고 그 정도로만 이야기를 한 듯싶어 미안하다.


그래서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면서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하루에 두 번 도시락을 싸가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나와 동생의 도시락 네 개를 싸 주면서 엄마는 괜찮았을까. 심지어 겨울에는 국까지 들어 있었다. 반찬은 날마다 달라야 했으니 정말 어떻게 그 도시락들을 몇 년씩 싸셨나 모르겠다. 우리가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엄마는 만세를 부르셨을 것 같다.


20년 전, 미혼일 때 ㅌㅇ이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저는 집에서 열심히 두세 시간씩 식사 준비를 하고 그렇게 준비한 식사를 손님들이나 가족들이 잘 먹으면 그렇게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정말.... 생각 없던 나는..."그런데 그렇게 먹고 나면 끝이라 허전하지 않으세요?"라는 대답을 했고,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바로 후회를 했다. 아 이 생각 없는 사람아.... 그때 당황하신 듯한 ㅌㅇ이 어머님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거나 나와 ㅌㅇ이 어머니는 사이가 좋았고 ㅌㅇ이는 아주 사랑스러웠고 동생 ㄴㄹ도 내가 직접 가르치진 않았지만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이래저래 보아서 전반적으로 가까웠다. (초임 시절의 그 학교는 학부모님들과 대부분 상담도 자주 하면서 아주 가깝게 지냈다.) 미혼의 열정으로 주말이면 여의도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에 데리고 다니고 1등 한 모둠은 맛있는 거 사주고 여름이면 1박 2일 캠핑도 갔으니 아이들과도 그리고 소통을 하게 되는 학부모님들과도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열정으로 꽉꽉 채운 첫 학교를 떠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육아휴직을 하고 있을 때였다.


ㅌㅇ이 어머님이 아이들이 잠깐 한국에 들어왔고, 선생님과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셔서 돌쟁이 큰 아이를 데리고 만났다. 그리고 그때 ㅌㅇ이 어머님께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사실 전에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제가 결혼 전이라 식사를 만드는 정성과 기쁨 그리고 그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잘 몰랐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음식을 만들다 보니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잘 몰라서 죄송하다고 생각 많이 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전혀 생각도 못하셨던 표정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재회를 잘 마무리했고 두 아이는 봉사활동을 한다고 갔다. 엄마가 사랑으로 준비한 음식을 받으며 자란 두 남매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아이들로 잘 크고 있는 모습을 가끔씩 확인한다.


아직도 몇 시간씩 힘들게 준비한 음식은 먹는 것은 너무나 한순간이다. 그래서 가끔씩 정말 수고에 비해 결과는 한순간이다 싶긴 하지만... 집에 오면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참 좋다고 누군가 하신 말씀이 기억나 열심히 하고 있다. 저녁 시간 즈음에는 맛있는 저녁 식사 냄새를  그 외 시간에는 하다못해 토스트나 베이킹 같은 달콤한 냄새로 아이들을 맞게 해서 누군가 너희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집을 생각하면 맛있는 냄새가 저절로 떠오르게 해서 늘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시라고 했다. 나 역시 결국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늘 손님들을 초대하시고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주한 모습과 아침저녁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던 그 모습이 같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래서 나도 엄마만큼은 못하지만 늘 아이들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어 오늘도 물어본다. "떡 좀 구워 줄까?" 우리 엄마가 구워주시던 그 맛있는 인절미 생각이 나서 아예 냉동실에 잔뜩 쟁여놓고 있는 그 떡들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차별주의자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