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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12. 2023

아이들이 싸울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 오늘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서 또 만났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구절로 강안 칼럼니스트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생 떽쥐베리가 어린 왕자를 쓸 무렵 그의 머리는 유대인 친구 레옹 베르트에 대한 걱정과 별거 중이던 아내 콘수엘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콘수엘로는 젊은 나이에 이미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 남편을 2년, 1년 만에 사별했고 생 떽쥐베리는 세 번째 남편이었다고 한다. 리비아 사막에서 불시착하여 실종된 지 5일 만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별거가 시작되었다. 세 번째 남편마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시선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 그 이유고 어린 왕자를 통해서 아내와 화해했다고 한다. 


뭐든지 빨리빨리 끝내고 싶은 한국인의 특성. 외국인 친구조차 8282라는 숫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전직 프로게이머였던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게이머들이 8282라는 숫자를 자주 채팅창에 쳐서 궁금한 나머지 알게 되었다는데, 숫자로 단어를 표현한다는 것이 그에 말에 의하면 'cool'하게 여겨졌다고. 우리나라에서 빨리빨리를 유독 재촉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일을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것은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의 속성이 아닐까 싶긴 하다. 효율적으로, 빠르게, 요점만 간단히. 어린 왕자에서는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그려내어 우리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시간을 들여 관계를 지속하는데 관심이 없다고.


오늘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선배 언니의 교실 이야기를 읽었다. 언니는 2교시, 그러니까 거의 백 분에 가까운 시간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쏟았다고 했다. 그렇게 한정 없이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나면 언니는 자신의 에너지와 시간이 소진되지만 아이들끼리는 사이가 좋아져 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도 그렇다. 아이들 간의 분쟁은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시작되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가 많다. 


목요일만 해도 처음에는 왜 뒤를 돌아보냐로 시작된 부분이었다. 그러다가 너는 왜 발표를 열심히 하지 않냐. 너는 왜 친구 어깨에 손을 올리냐. 얘는 내가 손을 올려도 괜찮다는데 왜 네가 불만이냐. 그러다가 나가 뒤질래. 그 말에 발끈한 다른 아이가 ㅆㅂ! 하면서 욕을 대차게 외쳤는데 그 순간이 참으로 공교로웠다. 교과 선생님이 딱 들어오시고 반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조용했던 순간이라 이 아이의 욕은 정말 교실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고, 아이들의 헉하며 숨죽이는 움직임이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둘이서 이야기를 계속 풀어서 서로의 억울한 마음은 가셨을지 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달은 되었다. 


선배 언니는 이렇게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그래도 학폭이 교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성품과 인품 사고력이 기본 이상인 아이들을 만나고 기본 이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언니의 말에 동의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교실에서 직접적으로 학폭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몇 번 아슬아슬했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감정의 파도가 마구 치솟아 오를 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교과서를 채 펴지도 못하고 다시 덮어야 했던 적이 참 많았다. 그리고 정말 언니 말처럼 그렇게 죽자고 싸웠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절친이 되어서 둘이 짝꿍을 하겠다고 호호호 이러고 있기도 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싸움을 종결시키려면 이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사실 불필요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있기에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 낼 수 있고 그래서 부정적인 것들을 해소한 아이들의 마음에는 긍정적인 기운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듣다보면 오늘의 싸움은 표면적이고 오랜 시간 쌓여있던 것들이 터져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가끔씩 아이들의 다툼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교과 수업 진도를 못 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오늘은 이렇게 시선을 바꾸어 바라본다. 오히려 정말로 중요한 건강한 마음자리를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짜 '도덕' 수업을 한 것이라고.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린도후서) 말. 아이들에게 오래오래 남을 귀한 것 한 가지. 내 이야기를 누군가 오래 잘 들어주었기에 또 나도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겪어 봐야 아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소중한 관계들. 고작 1년의 관계지만 그래도 1년이나 되는 관계를 사랑스러운 우리 반 아이들과 맺어갈 수 있어서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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