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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19. 2023

The Chair 순수하게 학문에만 빠지긴 어려울까

진짜 오랜만에 넷플릭스를 켜고 뭔가를 볼까 하다가 The Chair를 봤다. 산드라 오가 나오고 제니퍼 한이 대본을 썼던가. 얼핏 스쳐가며 본 것 같다. "내가 맡은 게 영문학과가 아니라 째깍거리는 시한폭탄 같아. 저들은 여자가 들고 있을 때 폭발하길 바라겠지."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편수가 많지 않고 이삼일에 걸쳐서 보기 딱 좋은 분량이었다. 나는 집에서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데 어떤 것을 봐도 아이들이 오가며 노출이 되기 때문이다. 18세 이상은 절대 보지 않고 15세도 잘 안 보는 편인데 그렇게 따지면 정말 볼 것이 너무 없어서 15세는 좀 본다. 더 체어는 내용이 그래도 아이들이 봐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큰 아이가 옆에서 본다. 그런데 음.... 아직까지는 큰 딸이랑 같이 보기엔 조금 어색한 성에 관한 부분도 나와서 큰 아이가 결국 보다가 "엄마 이상해!" 그러면서 가 버렸다. '손으로 해 준다'의 영어 표현은 'hand job'인데 여기서 "그게 무슨 뜻이지?" 하고 갸웃하는데 굳이 대답해 주진 않았다....


암튼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는 좀 생각할 거리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바람 중 하나는 영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대학교 4학년 때 영문학 개론을 공부하면서 내가 진짜 공부하고 싶었던 과목이 영문학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을 많이 했다. 편입을 할까 말까. 대학원에 가서도 영문학을 다룬 강좌는 전부 다 수강해서 교수님이 이제 그만 오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래서 이 TV 시리즈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룬 것은 영문학과의 위기. 우리나라에서만 문과 계열 학과들이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아닌가 보다. 영문학과가 처한 어려움을 여러 가지로 보여주는데 공감되는 것이 좀 많긴 했다. 백인우월주의에 남성중심주의까지 아주 대 놓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소수유색인종으로 흑인 여성 교수의 강의를 우수 강좌로 지정하려고 하고 종신직으로 채용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에 부딪힌다. 수강생이 5명 미만인 할아버지 할머니 교수님들. 학생들의 강의평가는 보지 않고 보더라도 기분 나빠하며 무시한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내 대학시절 은퇴 교수님의 강의였다. 발음은 새서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옛날옛적 교재로 그냥 책을 읽으면서 하는 설명식 강의라 정말 너무 힘들었다. 학교 측에서도 "이제 힘드시니까 안 나오셔도 되세요."라고 말을 해도 "아니야, 괜찮아! 나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좋아!"라고 하도 강력하게 말씀하시니 강의를 개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들었다. 


문학과 철학, 역사학과 같은 인문학 강의의 특징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인생을 더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실용학문의 중요성을 절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과 직결되고 사람의 삶을 현실적으로 윤택하게 만드는 과목들의 힘, 그리고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학과 생명 공학 등 이런 과목들의 힘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키워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사고를 이끌어내고 깊이 있는 시선을 형성하게 하며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키워주는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너무 적다. 그래서 덴마크의 학생들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간의 유예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탐색할 수 있는 기간.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채워보고 그래서 삶이 더욱 의미 있어질 수 있는 시간.


결국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학과장은 여러 사유로 불신임되어 물러나게 된다. 그 자리를 나이 든 남성 교수가 대신하겠다는 것을 백인여성교수가 그 자리에 앉는다. 교수라면 보다 순수하게 학문에 대한 고민을 하고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어 생각하는 힘을 끌어내는 정말로 집단 지성의 대표주자라고 생각했는데 복잡한 현실 사안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았다. 절친한 남사친 교수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입양한 딸과의 갈등,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데 학과를 둘러싼 온갖 문제들에 치여서 정작 내 삶까지 아우성이 되어 버리는 고뇌로 꽉 찬 현실. 이 드라마는 모든 것이 명쾌하게 해결되어 버리는 속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저곳에 가서 열심히 영문학에만 파묻혀 있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막연히 상상만 했던 내가 조금 많이 부끄러웠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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