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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15. 2023

때론 함께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반 아이들과 영화 보러 간 오후

더 마블스. 평점은 낮았고 혹평도 이어졌고 사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가 딱히 없는 것이다. 1947 보스턴을 봤으면 좋았을 것을.... 어쩌다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 이렇게 되어 버렸다. 여름에 좋은 영화도 많았는데 두고두고 아쉽다.


오늘은 우리 반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번 주는 영화 팀. 다음 주는 보드카페 팀. 이렇게 나누었다. 아이들은 "더 마블스 재미없대요!!" 하다가 "그래도 봐요!"로 의견이 좁혀졌다. 지난번 '러브 앤 썬더'도 평점은 낮았지만 나는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생각보다는 나을 거야라는 마음이었다. 원래 기대치가 낮으면 생각보다 괜찮기 때문이다.


7명의 아이들을 카니발에 태우니까 차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재잘재잘 거리는 6학년 아이들을 태우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선생님! 왜 그렇게 긴장하세요?" "다 너희들 안전을 위해서지." "우리 엄마는 아이들 태워도 괜찮던데." 나도 학생들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조심 안전 운전을 하지는 않지만 워후.... 무려 7명이나 되니까 정말 조심조심 안전하게 운전했다. 17분 정도 되는 거리가 아주 길게 느껴졌고 주황색 신호로 바뀌면 무조건 멈추고 무리한 끼어들기 차선변경도 절대 하지 않았다. "선생님! 엄마가 감사하다고 팝콘 사 드리라고 카드 주셨어요!" "팝콘은 선생님이 사 주는 거야." "우아!!!!!" 원래도 팝콘도 같이 사 주려고 했는데 다른 선생님으로부터 꿀팁을 받았다. 영화관람권이라는 것이 있는데 스위트콤보를 구매하면 28000원에 영화표 2매에 팝콘 라지 사이즈에 음료까지 2잔 포함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남는 장사라서 이 티켓을 4장을 구매했다.


우리는 살짝 늦었다. 팝콘을 사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제 막 시작했고 한낮의 영화관을 나와 아이들을 제외하면 4명의 관객이 전부였다. 조용히 보던 아이들이 끝날 무렵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관객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제재를 했겠지만 아주 작게 소곤거렸고 멀리 앉아 계셔서 그냥 두었다. 팝콘을 진즉에 다 먹어 버리고 음료수도 끝내서 중간에 아이들은 화장실도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영화 중간에 졸았다. 뱅글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장면부터 너무 졸려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 저 중간에 졸 뻔했어요." "나는 졸았어." 그리고 영화는 그냥저냥 재미있었다. 엄청 재미있고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그냥 좀 웃긴 장면들이 있었고, 아이들과 보기에는 무난했다. 고양이들이 나오는 씬에서 뮤지컬 캣츠의 '메모리'가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아이들에게 이거 캣츠에 나오는 음악이라고 알려주니까 더 좋아했다. 메모리가 아무리 명곡이라도 아이들은 모를 수 있으니까.


화가 끝나고 나오니까 4시. 이대로 학교로 돌아가서 집으로 보내기는 좀 아쉽다. "붕어빵 먹을래?"좋다고 길을 건넜다. 그런데 막상 붕어빵 아저씨 앞에 서니까 "저희 배가 불러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길을 건너서 짱오락실로 갔다. 아이들에게 현금 천 원씩 주었다. 천 원으로 인형 뽑기를 하던지, 게임을 하던지 알아서 놀라고 했다. ㅅㅁ이는 첫 판에 엘리멘탈에 나오는 로이드 인형을 뽑아서 의기양양했고 ㅇㅇ이는 나중에 햄토리 인형을 또 한 번에 뽑아서 행복했다. 부러워하는 ㄱㅂ이를 위해 내가 3천 원을 더 쓰고 ㄱㅂ이가 마지막 시도를 했지만 허무하게 끝났다. 다른 아이들은 아래에서 퍽치기?를 하고 게임을 하면서 좋아했고. 우리들의 나들이는 마지막에 세계과자할인점에서 과자를 사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오늘 엄청 재미있었다고 정말 올해 선생님 만나서 너무 좋았다고 또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나도 우리 반 예쁜이들 만나서 행복한 한 해였다. 날마다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또 말하면 들으니까. 혼나도 선생님이 진짜 미워해서 혼내는 게 아니고 혼날 만하니까 혼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이니까. 작은 게임 하나에도 까르르 웃으면서 열과 성을 다해서 임해주는 아이들이라 고마웠다. 가끔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일들도 있지만 그런 것은 또 피할 수 없이 당연히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다. 다음 주 보드게임카페를 데리고 나가면 그다음 주부터는 계속 출장이라서 좀 어려울 것 같고 졸업하기 전에 한 번 정도 더 나가면 선생님과의 데이트를 우리반 아이들이 최소한 한 번은 다 할 수 있겠다. 놀이공원을 가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건 나도 가고는 싶지만 좀 힘들다. 일단 체력적으로.


결론적으로, 더 마블스는 좋았다. 영화가 좋았다기보다는 함께 본 아이들의 웃음이 계속 남아서 좋았다. 예전에 남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영화.... 그래도 나는 좋았어. 왜냐면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니까." 그래.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른 것은 오늘 상황에 딱 맞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더 마블스'하면 까르르 웃어대던 아이들의 웃음, 선생님이랑 교실이 아닌 거리를 걷는 새로움이 마냥 좋았던 환한 미소,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별 거 아닌 일에도 나를 불러서 이야기를 해 주는 그 목소리들을 떠 올리겠지.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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