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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23. 2023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열었던 학급 알뜰장터

코로나로 중단된 행사 중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알뜰장터가 있다.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전 학년이 참가하는 대형행사였다. 홀수 학년이 2교시에 판매하면 짝수 학년은 3교시에 판매하는 형식이고 수익금은 자율적으로 기부함에 넣었다. 도덕책에 나눔 장터에 대한 부분이 나왔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서 해 보기로 했다. 저학년 때 한 두 번 해 보고는 코로나 때문에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집에 팔 물건이 없어요." "괜찮아. 없으면 그냥 안 팔아도 되지 뭐."


가져올 돈은 5000원 이내로 처음에 내가 결정했다. 그랬더니 반발이 좀 있었다. 요새 물가가 얼마인데 너무 싸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회의 끝에 원하는 친구들은 7천 원 선까지,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5천 원에 만족했다. 물건이 없다는 말에 나는 어제 집을 뒤졌다. 예전에 나 역시 알뜰장터에서 사 왔지만 이제는 장식이 된 귀여운 디즈니 열쇠고리 인형들, 작은 미니 가방, 새 마스크들, 작아진 게스 청바지 등등 그래도 괜찮은 것들로 골랐다. 

원래는 4교시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둥둥 떠 있었다. 1교시에 만들어 온 뉴스 영상을 보고 피드백을 한 다음에 조금 일찍 2교시를 하기로 했다. 물건을 세팅하고 가격을 정리하느라 바쁜 아이들. 먼저 한 번 둘어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장터가 시작되었다. 


ㅅㅁ이가 하나를 들어 보이면서 이야기한다. "선생님! 이거 엄마가 선생님한테 싸게 팔으래요. 이거 올영에서 좀 비싸요." 으아니..... 사고 싶다 물론. 더군다나 지금 크림이 똑 떨어져서 작은 샘플로 버텨보고 있는 처지라 솔깃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잖아!!! 장터 물품이라고 하고 선생님에게 싸게 넘기겠다니.... 이렇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줄이야. 나의 갸웃하는 고갯짓에 아이는 머쓱하니 웃으며 난감해하면서도 열심히 홍보를 한다. "선생님 이거 올리브영에서 되게 비싼 거예요." 그럼 안 되겠다. 비싸다는데 살 순 없지.


나는 일단 다른 코너부터 돌았다. 6학년이라도 아이들은 아이들. 피젯 스피너 같은 자잘한 장난감이나 학용품이 많았고 간식거리, 그리도 정말 드물게 안 입는 옷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 주려고 맨투맨 티를 무려 (최고가인) 3천 원을 주고 구입했고 작은 양말과 핫팩, 캘리그래피 책도 하나 샀다. 우리 반 이쁜이 ㅅㅇ이는 주로 책들을 가져왔는데 안 팔리고 있었다. 나무집이 오랫동안 안 팔리길래 "내가 사 줄까?"하고 갔더니 그 앞자리 ㅎㅁ이가 갑자기 "제가 살래요!"라면서 서둘러 지갑을 열었다. 나무집 117층이 2천 원이면 괜찮다. "선생님! 이 컬러링 책 천 원이면 충분히 싼 건데 ㅎㅅ이가 500원에 달래요!" "ㅎㅅ아! 그럴 땐 600원이라고 딜 하고 ㅅㅇ이 너는 900원 이렇게 조금씩 흥정해 보는 거야." 둘은 800원에 과자 하나 얹어 주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한 바퀴 다시 돌면서 한 번 더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ㅅㅁ이에게 갔다. "그거 ㄱㅂ이한테 팔았는데요?" 므와? "ㄱㅂ이한테 1500원에 팔았어요." 그래.... 그렇구나. 잘했네. 솔직히 득템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말이다. 아마 쓸 때마다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팔 것이 없다던 ㄱㅂ이는 핵심 아이템만 쏙쏙 잘 골라서 잘 샀다. 핸드크림도 600원에 샀고 크림은 엄마에게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궁금해서 방금 검색을 해 보니 최저가 만 원 정도면 사겠다. 온라인 최저가가 그 정도이고 실제가격은 최소 두 세배 이상 비쌀 듯.) 


ㅈㅇ이가 뭔가 만들기 키트 같은 것을 사서 가지고 있길래 "그건 뭐야?"라고 물었더니 "팔찌 만들기 세트요."라고 하길래 "와, 멋진 오빠네."라고 했다. 그랬더니 옆 자리 짝꿍이 "얘 동생 남자 앤 데요."라고 해서 그만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그.. 그래. 멋진 형아네." 아이들은 행복해했고 나는 아이들에게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알림장이 나간 후 한 어머니께 톡이 왔다. 구청에서 하는 어려운 이웃 돕기 행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차차.... 미리 모금함을 만들어 놓고 각자 알아서 얼마씩 넣은 후 공개적으로 세어서 바로 가지고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 반 이름으로 하는 것이니 더 뜻깊었을 테고 말이다. 다음에는 꼭꼭 바로 이렇게 해 봐야겠다. 팔 것이 없다던 아이들도 팔 것이 많다던 아이들도 모두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1시간을 잘 보냈다. 그리고 내가 번 돈은 우리 반 아이들 간식값으로 모두 다 나갔다. 수익금은 커녕 초과지출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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