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Nov 24. 2023

어쨌거나 현장학습은 현장학습

6학년 아이들과 전세버스를 타고 나갔습니다.

6학년은 수련활동이 계획되어 있었으나 설문 조사 결과 현장체험학습으로 변경되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답사까지 마쳤고 식당 섭외 및 동선 파악까지 다 끝난 상황에서 노랑버스사태로 우리 학교의 현장학습은 모두 취소되었다. 아이들의 충격과 불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미 정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모두가 어쩔 수 없는 가운데 우리 반은 오늘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장소는 서울특별시교육청과학전시관 남부분원. 학기 초에 공문이 왔고 좋을 것 같아서 신청했고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만 해도 인기가 많아서 선정이 안 될 확률도 높았다(고 생각한다). 보통 한 학교에 2 학급 (한 학년이 아니다) 정도 선정해 준다. 그런데 버스 사태 이후 난색을 표하는 학교들이 좀 있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어려움이 있을 경우 취소신청을 하라는 공문과 함께 추가 모집을 한다는 공문도 왔다. 나는 그냥 가기로 했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6학년 전환기프로그램. 이제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련된 과학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 와야 한다!!! 버스는 교육청에서 지원해 준다. 별도의 체험비나 차량 탑승비를 내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들에게 참 좋은 기회다 싶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했다. 아이들은 그냥 한 번 나가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과학 공부하러 간다고 이야기해도 놀러 간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까운 구로구에 있지만 안전운행을 해서 가야 하는지라 30분이 넘게 걸렸다. 처음 가본 과학전시관 남부분원은 작지만 잘 꾸며져 있었다. 온실에는 바나나 나무도 있었고 각종 열대 식물들이 잘 관리되어 있어서 다른 큰 온실들보다 오히려 나았다. 수족관에도 각종 물고기들이 있어서 역시 작지만 볼만했다. 여름에 왔으면 더 많은 초록초록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연꽃은 다 지고 진흙밭만 보여서 좀 많이 아쉬웠다. 그나마 초록이 보리 정도랄까.


첫 수업은 사물인터넷 수업. 이리저리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탐색해 보고 다음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누가 빠르게 가는지 대결한다. 바퀴가 하나만 굴러가는 아이, 한쪽만 굴러가는 아이, 잘 달리다가 경로 이탈하는 아이 등등 다양하게 나왔고 ㅈㅇ이가 1등 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ㅇㅇ이가 다크호스처럼 등장해서 1등의 영예를 거머쥐고 분단 아이들에게 사탕을 하나씩 선사하기도 했다. 자동차에 달린 카메라로 시선을 공유하면서 무선 조종을 해 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첫 수업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점심으로 나는 도시락을 쌀 시간이 물론 없으니 그냥 집에 있는 곡물 셰이크를 하나 들고 왔다. 물만 부으면 되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김밥을 내민다. "선생님 하나 드셔 보세요!" 아. 이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김밥을 세 통이나 싸 왔는데 안 먹어주면 도로 집에 가져가야 하고 아무리 가을날이라도 몇 시간씩 오래된 김밥은 위험하니까. 아이들이 하나씩 준 김밥은 맛있었다. 흑흑. 그리고 매우 양이 많았다. 결국 아이들은 그냥 다 나눠 먹었다. 다 못 먹고 남긴 채 뚜껑을 덮으려다 그냥 친구들을 불러서 나누기 시작했다. 과일도 과자도 젤리도 김밥도 소시지도.

"나의 샤머(샤인머스켓)와 너의 김밥을 바꾸자." 

"그냥 대충 마구 주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물물교환은 계속되었다. 

"내 귤 먹을 사람? 나 진짜 많이 가져왔어!" 

"저 귤 열 개도 넘게 먹고 있어요! 저는 귤이 진짜 좋아요." 

"선생님 이 과자 맛없지만 드셔보실래요?" - 맛있었다. 아이들은 느끼하다던데 왜 나는 맛있지.

"우리 엄마 김밥 장사 했어요!"라는 ㅇㅇ이네 김밥은 정말 눈물 나게 맛있어서 배가 부른 데에도 계속 먹고 싶었다. (양이 작아서 김밥을 몇 개 먹으면 배가 부르다.... 슬픈 1인이다...)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세 통이나 김밥을 싸 온 ㅇㅇ이는 결국 마지막 남은 김밥 하나를 힘겹게 입에 넣었다. 나도 배가 너무 불러서 먹어줄 수가 없었다. 점심을 다 먹은 우리는 다시 마당에 나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조금 놀다가 올라왔다. 오후 수업을 들을 시간이다. (사실은 아이들이 너무 활기차서 내가 그냥 데리고 올라왔다. 유치원 아이들이 수업 들으러 왔는데 마냥 신난 6학년들의 모습이 좀 x 팔렸다.)


이제 교실을 옮겨서 샴푸바와 다육이 화분을 만든다. 원래 하나만 해도 바쁜데, 많이 주시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램을 두 개나 넣으셨다. 처음 만들어보는 샴푸바는 특유의 향과 가루 때문에 재채기하는 아이, 눈물이 나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만하고 싶다는 아이는 하나도 없이 전부 다 즐겁게 만들었다. 피시본이라는 다육이를 압착코르크화분에 넣고 이름도 붙여주는데, 요새 아이들 몇몇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감돈다 싶더니 좋아하는 친구들 이름이 딱! 하고 써져 있는 거 아닌가. 와우. 그러면서도 끝끝내 사귀는 거 아니란다. 


나오는 길. 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야 이 정도면 재미있지 않았냐?" 

"오전은 확실히 재미있었고 샴푸바도 괜찮았지." 

"확실한 건 공부를 안 하니까 너무 좋았다는 거야." 

그랬다. 아이들은 일단 학교 밖을 나오는 것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비록 예정되었던 놀이공원으로 나가는 현장학습은 취소되었지만, 어쨌거나 현장학습은 현장학습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진짜 취지에 부합했으니 진정한 의미의 현장학습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오니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2시 반에 학교 앞에 도착했다. 1분의 차이도 없이 이렇게 6교시 하교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좌절했다. "이제 겨우 2시 반이라고요? 저 학원 선생님한테 3시 넘어서 온다고 했는데요. 힝."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한 마디 붙여주었다. 


"내일 일기 1편 써오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어찌 되었든 아이들과 학교 밖으로 나갔다 오니 눈에 피로가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침형 인간으로 탈피 시도 중인데 오늘 아침은 정말 눈 뜨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사고 없이 잘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여기 가는 선생님들은 모두 교사 책임이라는 확인서를 제출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열었던 학급 알뜰장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