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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Nov 25. 2023

지하감옥 탈출기

아이들과 함께

"아아아아아악!!!!!!"

1시간 동안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여기는 지하감옥. 왜 의도치 않게 나는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일까.


오늘의 데이트 장소는 방탈출카페. 데이트 상대는 우리 반 아이들 여섯 명이다. 아이들은 학급화폐를 이 날을 위해서 모으고 모았다. 반 아이들을 최소한 한 번은 데리고 나가려는 목표를 가지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내가 가능한 날짜와 데이트 내용을 설명해 주면 아이들이 가능한 날에 신청을 한다. 물론 더 가고 싶어서 열심히 활동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일단 한 번도 안 갔던 친구들에게 우선권이 있어. 자리가 남으면 그때 같이 가자."라고 설명해 주었고 아이들은 아쉬워도 이해해 주었다. 


원래는 보드게임 카페를 가 볼까 하다가 방탈출카페를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아이들 의견에 따라 장소를 바꾸었다. 방탈출카페는 보통 다섯 가지 정도의 테마를 가지고 있다. 테마마다 설정과 난이도가 다 다른데 나는 그나마 건전할 것 같고 덜 무서울 것 같은 '마법사'관련 테마를 선택해서 미리 예약을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 질문을 몇 개 던져보신 사장님은 지하감옥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추천해 주셨다. 감옥은 무서운데... 일부 아이들은 공포등급 5단계를 하고 싶다고도 했지만 몇몇의 반대로 그냥 무난하다는 코스로 결정했다. 10팀 중 4팀은 성공률을 보인다고. 다만 중간에 누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더욱 긴장한다.


안대를 끼고 극적으로 입장한다. 눈을 가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은 증폭된다. 지하감옥은 한 명의 손목에 쇠사슬을 묶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 자물쇠부터 풀어야 한다. 방탈출이 처음인 아이들이니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난감해한다. 나는 도움을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힌트를 벌써 두 번이나 써 버렸다. 25분 만에 겨우겨우 창살 밖으로 나온 다음 이제 본격적으로 풀기 시작하는데 은근히 무섭다. 비명을 꺅꺅 지르면서 어찌어찌 또 다른 통로의 문을 열었다. 


문이 스르르 열리는 순간, 이럴 수가. 6명의 아이들 모두 다 소리를 꺄악! 지르며 안전한 감방 안으로 달려들어가 버렸다. 나만 덩그러니 입구에 남겨두고. 모두 꼭꼭 끌어안고 선생님 보고 좀 들어가 보란다. 와, 이 배신자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솔직히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쿡쿡 웃으면서 들어간 다음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여기서도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통로문을 열 수 있었다. 출구가 열린 줄 알고 (나는 버려두고) 신나게 나간 아이들은 다시 비명을 지르며 돌아왔다. 너무 무섭다는 것이다. ㅎㅅ이가 용감하게 "무서워요!"라고 외치며 마지막 힌트를 통로 끝에서 해독했다. 그동안 다른 아이들은 ㅎㅅ이를 버려두고 큰 방에서 안정감을 즐겼고 ㅎㅅ이는 마찬가지로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1시간 4분 만에 탈출! 힌트는 다섯 번 밖에 쓰지 않았으니 초보들 치고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나오는 길, 나름 고생한 아이들에게 초콜릿 아이스크림 콘을 하나씩 사 주었다. 이 방탈출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겠노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이 좀 더 있으면 보드게임 카페도 좋았겠지만 1시간 정도도 남지 않아 간단히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코스. 짱오락실로 데려갔고 한 사람 당 천 원씩 주었다. ㅇㅅ이는 ㅅㅁ이처럼 인형을 한 방에 뽑았다. ㅅㅇ와 ㅎㅇ는 게임을 즐겼고, ㅎㅅ이는 인형을 뽑으려고 4번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 "선생님. 저 만오천 원만 있으면 뽑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랬으면 만오천 원을 그냥 버렸을 수도 있어." 벌써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집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또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오늘은 평소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던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한 아이들이라서 또 좋았다. 듣는 것을 더 잘하고 듣는 것에 더 익숙한 아이들이 오늘은 말을 더 많이 하고 생각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저는 오늘 동생한테 가서 자랑할 거예요. 저는 선생님이랑 학교 밖에서 못 놀아 봤지~~~~!" 

오늘 보니 일기장에도 이렇게 써져 있다. 

'다음에 또 선생님이랑 선생님이랑 놀고 싶다.' 

'선생님이랑'을 두 번 강조한 것이 또 귀엽다. 


나도 너네랑 매일매일 놀아주면 좋겠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이벤트라서 더 좋은 거겠지. 이제 데리고 나갈 아이들은 5명 남았다(초등학생도 시간이 바빠서 스케줄 맞추기가 어렵다). 졸업 전까지 딱 한 번 정도만 더 나가면 될 것 같은데 시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교실 안에서 보던 모습과 교실 밖에서 보는 모습은 또 달라서 의미가 있다. 공간이 달라지고 다가올 수 있는 거리가 달라지니 몰랐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늘 아쉬운 것은 담임의 기한은 일 년뿐이라는 사실이다. 조금 더 알게 되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래서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연말이 되면 나는 교장 선생님께 찾아간다. "혹시 이대로 데리고 올라가도 될까요?" 지금까지 괜찮다는 답변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엇보다도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다.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반 전체는 안 되지만 반 배정을 마친 다음 상위학년의 담임이 되는 것은 된다. 그렇게 라도 해서 아이들과의 끈을 이어가고 싶은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이제 졸업한다. 함께 기약할 수 있는 내년이 없어서 그래서 우리는 또 하루하루 아끼며 보낸다.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

#초등학교6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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