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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01. 2023

6학년 급식 먹이기

밥을 안 먹습니다.......

나는 원래 밥을 챙겨 먹이는 교사였다. 어떻게든 급식을 잘 먹게 하려고 애를 썼고 식판 검사도 꼭꼭했다. 반찬은 정말 먹기 싫은 한 가지만 남기기, 국물에서 건더기는 다 먹기 (국물은 남겨도 좋다), 다 먹은 아이는 학급화폐 하나 내기, 반찬 남기고 싶은 아이는 자유급식권을 한 주에 하나 사서 쓸 수 있게 하기 등등으로 갖은 아이디어는 다 짜내었다. 저학년 담임일 때는 정말로 급식 먹이기 전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밥을 먹여주었다. ㅈㅇ는 밥을 정말 안 먹는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나와 ㅈㅇ 둘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면 ㅈㅇ는 잠시 뒤에 슬그머니 일어나서 급식을 몽땅 버렸다. 이건 아니다 싶어 가끔 먹여주면 양쪽 볼이 볼록하게 다람쥐처럼 입에 물고 있었다. 언제 삼키나 싶어서 지켜보는데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화장실에 꼭 들렸다 갸름해진 볼로 돌아왔다. 다음부터는 삼킬 때까지 기다린 적도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마음이 밀려왔다. 확실히 챙겨 먹이니 ㅈㅇ와 ㄱㅁ이는 키가 한 해 동안 많이 자랐지만 일 년 내내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아이도 나도 지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두어 해 전부터는 다 먹으면 칭찬의 의미로 스티커를 하나 주지만 굳이 안 먹겠다는 음식을 먹이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도 싫어하는 음식은 (그런 건 없다 사실. 세상에 못 먹을 음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먹기 싫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1학기 말 즈음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ㅎㅇ가 밥을 너무 안 먹어요." "밥을 그냥 다 갖다 버려요!" ㅇㅎ 뿐만 아니라 ㅎㅁ이, ㅁㅊ이 모두 제보가 들어왔다.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그냥 급식판 채로 갖다 버린 날도 있다고 했다. 내 자리에서 시선이 닿지 않는 거의 끝자리여서 가능했다고. 그래서 ㅎㅁ이는 매일매일, 다른 아이들은 주 3회씩 검사를 맡도록 했다. ㅎㅁ이는 그래도 잘 와서 검사를 받는데 ㅎㅇ는 아예 오지 않았고 ㅁㅊ이는 이제 잘 먹는다는 것을 옆의 아이들이 증언해 주어 검사에서 제외되었다.


이제는 다른 불평도 들어왔다. 밥을 먹지 않고 장난을 치거나 손톱을 파고 코를 판 손으로 다시 밥을 먹어서 비위가 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ㅎㅇ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정말로 밥을 먹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맛있다는 급식 반찬도 ㅎㅇ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재촉을 하면 그제야 아주 살짝, 정말 좁쌀만큼 뜯어서 맛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콩알만큼 조금 더 먹었다. 김치도 아주 잘게 찢어서 먹었고 밥도 젓가락을 밥알을 세어서 먹었다. 그래도 계속 먹으라고 말을 하면 조금은 더 먹었다. 밥을 먹는 대신 물을 한 번 마시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한 번 더 가고, 화장지를 뽑으러 일어나고, 그러다가 코도 만지고 손톱도 만졌다. 밥 먹는 시간에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6학년 아이들은 15분이면 밥을 다 먹기 때문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고 나서 ㅎㅇ를 보니 아이가 키에 비해 마른 것이 보였다. 2학기 내내 나는 ㅎㅇ 앞에 앉았다.


오늘은 밥도 먹지 않는다. 임연수 데리야끼 강정도, 단호박샐러드도 물론 당연하게 외면당했다. 내가 ㅎㅇ와 한 가지 원칙을 세웠으니 반찬이 먹기 싫어 손도 안 댄 날은 밥이라도 어느 정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사실 오늘 반찬은 다 맛있었다. 나는 단호박 샐러드를 한 번 더 갖다 먹고 싶었으나 칼로리를 생각해서 참을 정도로 맛있었는데 ㅎㅇ는 세상 징그러운 음식인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몸이 달았다. 진즉 밥을 다 먹고 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ㅎㅇ는 오늘따라 밥을 천천히 먹었다. 아이들은 울상이 되었다. "선생님! 급식실이 비어 가고 있어요!" "저희 보다 늦게 온 아이들도 다 일어나서 가는데요?" 우리 반은 급식을 먹고 가서 1인 1역도 해야 하고 3 줄 쓰기 검사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매우 짧다. 그래도 나는 기다렸다. ㅎㅇ가 다른 아이들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싶었다.


사실 ㅎㅇ는 좀 색이 분명하다. 본인의 세계에 빠져서 다른 아이들은 신경을 안 쓸 때가 많고, 무엇이든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작품 완성도가 높은가 하면 좀 애매하고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심성이 착하고 책을 좋아하고 짓궂은 장난은 친 적이 없는 마음이 예쁜 아이. 그래서 나는 좀 안타까웠다. 조금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봐 준다면 참 좋을 텐데. ㅅㅁ이는 화가 많이 났다. 1인 1역도 대강 해 놓고 다 했다고 하니까 더 화가 났다. x표를 치겠다는 말에 다독이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ㅎㅇ를 불렀더니 ㅎㅇ도 화가 났다. 1인 1역을 했다고 하는데 왜 자꾸 안 깨끗하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ㅎㅇ가 화를 내는 일은 드문 일이다. 화가 난 ㅎㅇ에게 나는 여기를 보라고 가리켜 주었다. 마지못해 쓸었다. 억지로 억지로 쓸으려 하니 쓰레받기에 담기진 않고 시간만 지나갔다. 3줄 쓰기 검사하는 친구들은 또 ㅎㅇ 이름을 열심히 불렀다. ㅎㅇ만 안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 이래저래 기분이 나빴던 ㅎㅇ가 지나가면서 ㅆㅂㄴ이라고 욕을 했다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했다. ㅎㅇ가 욕했다는 말도 나는 처음 들었다. 


과학실로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ㅎㅇ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ㅎㅇ는 집에서는 밥을 잘 먹는다고 했다. (아니다. 나는 이미 ㅎㅇ 어머니와 예전에 이 문제로 통화를 했고 하도 안 먹어 영양제를 억지로 먹이고 계시다고 했다.) 점심은 상관없고 급식은 엄마가 해 준 밥보다 맛이 없어서 먹기 싫다고 했다. 밥도 반찬도 모두 다 맛이 없다고. 나는 사정을 했다. "나도 우리 엄마 밥이 더 맛있어." 그랬더니 이제는 "밥 양이 너무 많아요."라고 했다. ㅎㅇ가 받아오는 급식의 양은 다른 아이들의 절반 수준이다. 잠깐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오늘 저녁밥 양 사진 좀 찍어 오라고 했다.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ㅎㅇ에게 사정을 했다. 반찬을 하나도 안 먹을 때는 밥은 좀 더 많이 먹어야 하고, 반찬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밥은 조금 적게 먹어도 된다고. 그리고 반 전체가 기다리니 부탁한다고. ㅎㅇ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하면 '아... 귀찮은데. 꼭 밥을 먹어야 하나?'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ㅎㅇ는 사실 다른 아이들이 자기를 기다리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우리 공동체 생활이 있으니 밥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먹어달라고 했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ㅎㅇ는 또 천천히 일어나서 과학실로 천천히 향해 갔다. 과학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와서 짐을 챙겨 가는 ㅎㅇ를 보니 표정이 밝고 유쾌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마음이 상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 내일은 밥을 조금만 더 부지런히 먹어주면 좋겠다. 반 입 먹고 생각에 잠기지 말고 그냥 반 입씩 계속 먹기라도 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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