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Dec 05. 2023

독감이지만 출근합니다

기껏 갔건만..... 집에 있을 걸.

사실은 출근하면 안 되는데 그냥 출근한다. 병원에서 진단서도 써 주고 격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내었는데 생각해 보면 좀 어이가 없다. 쉬어도 되는데 왜 출근을 하니.


그렇게 하루 만에 아이들을 만났다. 시끌시끌하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가 먼저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 3반 선생님 엄청 무서웠어요! 점심시간에 실과 선생님이 밥도 안 드시고 쳐다보시는데 부담스러웠어요! 점심시간 20분이 그냥 사라졌어요! 오늘 자리 바꿔요!" 그러고 나서 슬그머니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를 생각난 듯 붙여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어째 선생님 보고 싶다는 애들은 별로 없네. 아픈 거 너네 걱정에 억지로 나왔는데 그냥 다시 집에 가야겠다." 어제 나 없는 하루를 보내며 이리저리 방황했던 아이들은 아차 싶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엄청 엄청 보고 싶었어요!!!!"


출근해서 교실에 앉아 있는데 머리는 계속 핑핑 돌지, 목소리는 안 나오지, 하루 안 나온 사이 일감은 쌓여있어 정신없는 와중. 아이들은 밀린 이야기와 하소연을 들고 오느라 선생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아파 보이니 조금 조용히 할까 싶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자기들 이야기에 바쁘다. 

"선생님! ㅈㅇ이는 왜 돌아다녀요?" 

지난주에 ㅈㅇ이, ㅎㅁ이, ㅁㅎ이, ㅅㅇ가 교실문 가지고 장난치다가 교실문이 빠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게 교실 문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했는데 늘 그렇듯 사고는 정말 잠깐 사이 발생한다. (6학년입니다.) 평소에도 너무 돌아다니는 아이들이라 하루 동안 쉬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는데 못 참고 계속 돌아다녀서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었다. (바로 그 전날 둘이서 장난치다 서로의 몸에 상처를 내는 사건이 발생해서 더 그랬다. 어쩌면 하루를 못 가니...) ㅎㅁ이는 더 돌아다녀서 하루가 늘어났는데 ㅈㅇ이는 이제 끝났다. ㅎㅁ이는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와서 쟤는 왜 돌아다녀도 되냐 나는 왜 안되냐로 계속 따지는데 정말 머리가 너무 아팠다. 어지러워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선생님에게 계속 와서 이러니 나도 모르게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라는 물음이 나왔다. "네!"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ㅎㅁ이의 말에 "그럼 너도 그냥 돌아다녀!"라고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평소라면 잠시 후에 ㅎㅁ이를 불러다가 다독였을 텐데 또 다른 일로 ㅎㅈ랑 이야기하다가 ㅎㅁ이랑 이야기한다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내일은 ㅎㅁ이랑 꼭 이야기를 해야지.


출근을 하기로 작정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천방지축 우리 반을 다른 선생님 손에 맡기자니 영 안심이 안 되는 것이다.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죄송해서이다. 지난번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올 정도로 아픈데도 기어코 이틀도 안 쉬고 나왔던 3반 선생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어제 못 간 회의 세 개는 그렇다 쳐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회의와 출장이 있는데 이건 빠질 수도 없다. 회의는 이미 한 주 미룬 것이라 더 이상은 안 된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니 하루 사이 밀린 메시지가 마구마구 쏟아진다.


독감인데 학교를 가다니... 아이들에게 옮기면 어쩌려고?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이유가 있다. 나는 열이 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약으로 증상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열이 나지 않았다. 그저 근육통과 두통이 심할 뿐. 열이 내린 후 24시간 이후에도 발열 증상이 없으면 격리가 해제된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열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격리 해제의 기준 역시 모호했다. 


또 지금 시점에서의 학교 사정이란 것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치료를 미루고 미루시다 병이 커지셔서 큰 수술을 하시고 병가를 쓰시는 중이시고, 교감 선생님 한 분은 상을 당하셔서 지금 또 한 분의 교감 선생님께서 혼자서 일을 다 도맡아 하고 계신다. 웬만하면 병가를 쓰라고 하시는 분들이 지난번에는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가능하면 수업은 해 달라고, 그리고 조퇴해 달라고 처음으로 부끄러워하시며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제 임용고시가 코 앞이기 때문이다. 보통 강사로 와 주시는 분들은 대체로 다들 공부에 매진하는 중이라 강사를 구할 수가 없다. 강사를 구할 수 없으니 시간이 되시는 선생님들이 보결을 해주시는 것이다. 어제도 동학년 선생님들이 교과 시간을 반납하시고 우리 반을 챙기시고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오가시느라 분주하신 것이 보였다. 어제 동학년 단톡방에 올라오는 우리 반 이야기와 부탁드릴 이야기들로 가득하여 집에서 있어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수액도 맞았으니 학교에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수액을 맞으면 빨리 낫는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회복만 좀 속도를 내는 것뿐이었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내가 며칠 없어도 학교는 잘 돌아가는데 왜 굳이 나왔느냐면서 진짜 안 좋아 보인다고 하시고. 역시 아플 때는 쉬어야 하는데 스스로를 과신했던 나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업무 속도도 0.5배속이다. 그래도 기어코 해냈다. 회의도 잘 마쳤다. 중학교 과학선생님인 동생은 자신은 독감에 걸렸을 때 5일 쉬었다고 한다. 5일이라니...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은데 한편으로는 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 무리하지 말고 기력을 보충해 보자. 야이... 밥오밥오밥오야....

매거진의 이전글 6학년 급식 먹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