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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07. 2023

뒷말의 파장

아이가 눈에 밟힌다. 이미 버석하게 갈라진 틈을 촉촉하게 채우기가 참 쉽지 않다. 이 일의 파장은 한 달 전 즈음. 아이들이 ㅂㄱ에 대해서 호소를 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반 아이들 전체에 대해서 거의 '깠다'라는 것이다. 이 표현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몇 번을 물어보니 '뒷담을 깠다'라는 것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친한 아이들이 세 명이 있었는데 절친에 대해서 조차 서로서로에게 안 좋은 이야기를 해 댔다는 것에 대해 두 명은 크게 상처를 받아 얼굴조차 쳐다보지도 않고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사정상 학교를 잘 못 나오는 아이라서 어색해진 틈을 메우기가 너무 힘들다. 같이 학교에 있으면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되돌리려는 노력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한두 시간, 많아야 세 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다시 조퇴를 해야 하는 형편이니 간극은 점점 벌어져 간다. 이번 주는 아예 내내 학교를 나오지 못한다. 


어제는 배드민턴을 하는 날이었다. 서로 다른 반 친구들과 15번 이상 1대 1 매치를 해서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배드민턴을 배울 시간조차 없었던 아이는 안 하고 싶어 했지만 수행평가에 들어가는 부분이라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몇몇이 이 아이와 짝꿍이 되는 것을 슬쩍슬쩍 피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물론 지혜롭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했다. 하지만 만회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잔인하다. 이 아이도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해 토로하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없는 자리였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 가운데 마음이 그래도 넓고 대담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ㅂㄱ와 배드민턴 짝꿍이 되어 주었다. 서브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던 아이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친구들이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짝을 바꾸고 모둠을 새로 정하는 날. 6학년의 마지막 이벤트로 나는 두 달 전부터 아이들에게 약속을 했었다. 구성을 잘 짜오면 원하는 친구들과 함께 앉게 해 주겠노라고.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짜왔다. 예기치 않은 조합도 있었다. 여여여여 남남남남 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남녀비율도 적당하게 잘 맞춰왔다. 그런데 비인기 모둠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ㅎㅇ와 ㅂㄱ가 있는 자리였다. 오늘따라 독감에 걸린 아이들이 있어서 두 명은 학교를 못 왔는데 그중 한 명이 ㅂㄱ와 사이가 멀어진 ㅎㅈ였고 어쩌다 보니 ㅎㅈ와 ㅂㄱ가 한 모둠이 되게 생겼다. ㅎㅈ의 어머니는 학기 초부터 친구 문제로 고민이시라면서 전화상담을 많이 하셨는데, 내가 보아도 이 모둠 구성이라면 둘 다 상처 입게 생겼다. 반 아이들도 자리 배치도를 보는 순간 이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몇 번의 이야기 끝에 우리는 오늘 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난 후 나는 먼저 ㅎㅇ를 불렀다. 이 이야기는 또 다른 부분이라 여기서는 건너뛴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를 다독거려서 보냈다. 


다음으로 임원인 두 여자 아이가 내게 왔다. 나는 두 아이에게 먼저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이 상태로 6학년을 마칠 수는 없다고 했다. 서로의 마음에 갈라진 틈이 있는 채로 졸업을 하게 되면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계속 아픔이 될 거라고. 그러기 위해선 서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누군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둘이 ㅂㄱ를 감싸고 잘 대해주어서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그리고 대놓고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힘들겠지만 잘 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해 보자고 했다. 


며칠 지나서 ㅎㅈ가 학교에 왔을 때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ㅎㅈ는 이런 일은 이미 5학년 때 여러 번 겪어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또 아팠다. 여러 번 겪는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은 없다. 오히려 상처가 덧나고 덧날뿐이지. 그래서 ㅂㄱ에 대한 감정은 자기는 이제는 무덤덤하지만 ㅅㅇ이는 좀 힘들 거라고 했다. 다음 날은 ㅅㅇ이와 이야기를 했다. ㅅㅇ이는 사실 많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물어보았다. "서로 털어놓고 푸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잠시 생각하던 ㅅㅇ이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사과받고 싶었는데 아니에요. 사실 ㅂㄱ가 다른 아이들 욕할 때 저도 거기에 같이 참여했거든요. 저도 같이 다른 사람 욕해 놓고 나서 이제는 사과를 받는다는 것도 부끄러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의 상처만 생각하던 아이가 몇 주 사이 훌쩍 컸다. 그래도 둘이서 터놓고 이야기를 하면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좀 어렵게 되었다. 나라도 내 베프가 다른 절친에게 내 욕을 했다면 용서는 하더라도 신뢰를 다시 쌓기는 조금 버거울 것 같다는 생각에 차마 더 권하진 못했다. 


누구보다 믿었던 아이이기에 나 역시 마음이 무겁다. 사실 아무리 의젓해도 6학년은 여전히 초등학생일 뿐이다. 이렇게 깊은 아픔을 겪으면서 사실은 함께 또 울고 웃으면서 성숙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한 반에서 일 년간 생활하는 운명 공동체인데, 나름의 바쁜 사정으로 인해서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ㅂㄱ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아이는 훗날 정말 유명해질 것이다. 재능과 그에 더하는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안다. 총명하고 성실하다. 다만 지금의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것인데, 미래를 향한 그 과정 속에서 아이는 일반적인 평범한 학교 생활과 친구들과의 갈등과 극복의 시간을 바쳐야 하는 것이 안쓰럽다. 오늘도 우리 반에서는 울고 웃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눈물을 보인 ㅎㅇ와, ㅎㅇ를 좋아하진 않지만 논리적으로 옹호해 준 신사 ㅈㅇ이를 보며 또 생각한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성장하고, 아이들도 성장하고, 그렇게 끈끈한 애정과 결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자리에 ㅂㄱ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생각했다. 


그렇지만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혼자서 고민하는 동안 ㅂㄱ는 이미 성장했을지도. 어떤 형식으로든 나름의 과정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돌이킬 수 있고 전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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