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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12. 2023

생기부 사진을 바꾸던 날

"학년 폴더에서 각 반 사진 다운 받아서 생기부에 넣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메신저 알링창이 반짝인다. 부장님 연락이다.


15년 전 분명히 6학년 담임 업무를 했었는데 강산이 1.5번 바뀌는 동안 내 기억도 완전히 바뀐 것이 분명하다. 중입 관련 서류를 시기에 맞춰 제출한 것, 졸업 사정회, 졸업생 상장 등등의 업무는 대강 기억이 나는데 가끔씩 '이런 부분도 있었네?' 할 때가 있다.


오늘은 나이스에 들어가 학생생활기록부에 등재된 아이들 사진을 바꾸었다. 1학년 입학하고 나서 교실에서 찍었을 6년 전의 모습들. 나는 몰랐던, 볼 수 없었던 그 1학년 때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통통한 볼, 동글동글한 얼굴, 순수한 표정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반쯤 겨우 보이는 칠판 배경이 있다. 키가 작아서 반은 초록 반은 교실 벽인 배경이다. 아기아기한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1학기 말 졸업앨범 촬영을 위해 찍은 프로필 사진으로 하나씩 바꾸기 시작했다.


6명 정도 바꾸었을 때, 이대로 바꾸기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장을 누르지 않고 뒤로 가기를 눌렀다. 어디 있더라.... 사진 명렬표를 출력할 수 있을 텐데. 사진 명렬표를 써 본 적이 없어서 헤매면서 몇 번 클릭을 누르니 곧 나왔다. 교실 컴퓨터는 흑백이라 바로 출력할 수 없다. 일단 저장하기를 눌렀다.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서 학급 문집에 실을지 말지, 그냥 삭제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분명히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기도 할 테니까. 금요일 정도 물어보고 결정해야겠다.


다시 작업을 한다. 한 명 한 명. 통통하던 볼은 갸름해지고 이제 배경인 칠판은 없다. 표정도 귀여움보다는 시크함이 폴폴 묻어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사진 속에는 잘 보이지 않는,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독특한 귀여움을 떠올리자니 또 쿡쿡 웃음이 나온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을까. 나는 고작 1년도 안 되는 십 개월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도 이렇게 애틋하다면, 6년의 시간을 잘 키워오신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떨지 또 상상해 본다. (내게 물론 중학생인 두 딸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애틋함이다.)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차근차근 사진을 새로 등록한다. 마지막 학생까지 입력이 끝났다. 한 번 확인한 후, 살짝 힘을 주어 저장 버튼을 누른다. 굳이 힘을 주어 누를 필요가 없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이대로 저장을 해 버리면 정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서 굳이 조금 더 힘을 내야 했다. 이제 정말 3주 정도 남았다. 아. 우리 반. 너네 졸업시키는 날 나는 펑펑 울겠지. 지금도 벌써 눈물이 나는 걸. 잘 참아보자. 그리고 아이들을 보낸 빈 교실을 보면서 또 한 동안 가슴앓이를 하겠지. 이렇게 조금씩 보냄을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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