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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Dec 14. 2023

아이들이 문단을 못 만들었던 이유

흔한 6학년 교사의 반성

눈이 빨갛다. 핏줄이 터진 것처럼 양쪽 눈 모두 충혈되어 있는 것을 거울 보고 알았다. 요새 대부분의 시간을 편집에 쏟느라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탓이다. 나름 일찍 시작한다고 했는데 역시 학급문집 만들기는 녹록지 않았다. 아이들이 일 년간 만든 미술 작품을 골라내어 사진을 찍고 스캔하고 파일에 담아서 정리한다. 처음에는 그냥 간단하게만 하려고 했는데 특정 부분에서 발휘되는 내 완벽주의적 성향이 이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깔끔하게 잘라내고 크기를 맞추고 표에 넣고 표 테두리를 작품에 어울리게 변형하고 색을 입히며 스무 페이지 가량을 완성했다. 그래도 여기는 쉬운 부분이다. 


제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은 십 개월 동안 아이들이 차곡차곡 패들렛에 담아 온 생활의 기록이다. 한 달에 두 편의 세줄 쓰기와 한 편의 일기만 쓰도록 했음에도 24명의 아이들이 쓴 글들이 모이니 백 페이지 가량이 되었다. 패들렛 본문에 본인의 이름을 써야 하는데 제목에 썼기 때문에 내가 하나하나 다 타이핑을 해서 이름을 쳐 넣는다. 날짜는 '3월 25일'과 같은 양식으로 쓰라고 했지만 다 자기 마음대로 썼다. 3/25도 있고 03.25도 있고 20030325도 있고 3 . 25 .도 있고 아예 날짜가 없는 것도 있다. 하나하나 3.25. 과 같은 양식으로 통일한다. 처음 알려준 것처럼 '월'과 '일'을 붙이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요일도 쓰다가 나중에는 반쯤 포기했다. 이것도 괜찮다. 


제일 많이 나온 실수가 마침표 다음에 한 칸 띄지 않고 붙여 쓰는 부분이었다. 아예 마침표가 없는 문장도 수두룩했다. 또 하나하나 마침표 뒤에 커서를 대고 스페이스 바를 누른다. 점을 찍어 주고 오타를 고쳐주고 두 번 띈 칸은 한 칸으로 줄여준다. 이 문서 편집 예상 시일을 이틀, 길어야 사흘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일주일이 꼬박 걸렸다. 


그리고 문단 나누기. 한 줄에 한 문장이 아니라 여러 문장을 이어 써야 하는데 유독 몇 명의 아이들이 한 줄에 한 문장만 썼다. 처음에는 일부러 글의 맛을 살리려고 하나 싶었는데 읽다가 보면 또 그건 아니었다. '왜냐하면'과 같은 단어 뒤를 아예 공백 처리하고 줄을 바꾸어 그다음 부분을 이어 쓰는 것이다. 이것도 다 바로 잡는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재작년에 학급 문집을 만들 때 생활글 쓰기에 이렇게 많이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는 3학년 아이들이라 집에서 입력한 후 메일로 받았었다. 부모님들이 해 주셨으니 당연하게도 오타가 적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활글까지 다 편집을 완료한 후, 아이들에게 자주 틀리는 단어들과 맞춤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리라 생각 헸다.


편집하기 이전 파일을 보여주면서 "여기! 마침표 없지! 여기! 지나치게 띄어쓰기가 많이 되어 있지! 여기! 마침표 다음에 칸을 안 띄었지! '이어서'를 '이여서'로 쓴 사람도 많았고 '과자의 날'을 '과자에 날'로 쓴 사람도 많았다." 우연하게도 마침 유독 한 아이의 글이 두 번이나 무작위로 보여주는 화면에 올라왔다. 굳이 이 설명을 했던 것은 아직도 두 편의 글을 더 완성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오늘은 주장하는 글 고쳐쓰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으로 쓰는 것은 힘든 일인지라 문서로 입력한 후 출력해서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인이 친구들과 의논해서 수정해 온 뒤, 나에게 검사를 받고 다시 보낸다.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래도 고칠 것이 있으면 또 출력해서 한 번 더 고친다. 여기서 또 아이들이 한 줄에 한 문장씩 써 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문장을 한 줄에 하나가 아니라 이어서 써 오라고 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다. "어떻게 줄을 바꿀 수 있어요?" 그랬다. 아이들이 딜리트 키와 백 스페이스 키, 엔터 키의 사용법을 잘 몰랐던 것이다. 설명을 해 주고 나니 또 다른 아이가 그렇게 해서 나왔고 오늘만 몇 명의 아이들이 이 사용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나중에 오늘 두 번이나 TV 화면에 수정사향이 많았던 글이 나왔던 ㅁㅅ이가 수줍은 얼굴로 멋쩍게 이야기를 했다. "제가 집에서 컴퓨터 같은 것을 많이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어요." 순간 어찌나 미안하더니 '이거 낭패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 그랬구나. 미안해. 선생님이 몰랐네."라고 말하고 ㅁㅅ이가 고쳐온 글을 둘이서 한 번 더 같이 점검했다.


편집을 하느라 눈은 까슬하고 머리는 멍한데, 어떻게 문장을 한 줄에 여러 개 쓸 수 있는지 정말 몰라서 당황해하던 ㅈㅇ와 ㅈㅇ(오... 둘 다 성의 초성까지 같으나 다른 아이들)의 표정과 ㅁㅅ이의 조용한 속삭임과 같은 말이 계속 생각이 났다. 6학년이니 그 정도는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나의 선입관이었다. 


지난번 조이스박 교수님 연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책장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도, 책을 읽을 때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도 배울 기회가 현저하게 적다는 것이다. 집에 책이 없고, 책을 읽는 사람도, 당연하게도 읽어 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이나 데스크톱과 같이 큰 화면으로 온라인 세계를 접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만 접한 아이들의 세계관도 그 좁은 화면만큼이나 좁아진다고 했다. 볼 수 있는 시야가 작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나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았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그렇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책장을 어떻게 넘기고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결국 컴퓨터 자판을 사용하는 것도, 그 자판을 이용해서 글을 쓰고 완성하는 것도 집에서 부모님이 어떻게 알려주는가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발표 자료를 만드는 것도 집에서 부모님이 알려주면서 도와주는 것과 혼자서 땅을 파면서 만드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결과물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스스로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이들의 부모님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분들이란 것은 안다. 하지만 또 맞벌이로 매우 바쁘신 분들이란 것도 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하도록 맡기신 부분이 컸다. 착하고 성실한 아이들이라 그래도 잘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작은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서 챙기지는 못하셨던 것이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미처 몰랐던 내가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고 미안했다. 6학년이니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잘하겠지.'는 없다. 이렇게 올해 또 많은 것을 배웠으니 내년에 만날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잘 알려줄 수 있겠지. 내일 가서 한 번 더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까 싶어 계속 걸린다. '전전긍긍하다'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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