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Dec 03. 2023

굿바이, 피아노

for a while 잠시만이야

올 5월부터 다시 시작했던 피아노. 여름 방학 동안 레슨을 받으면서 너무 행복해서 삶이 좀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느꼈다.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시월 중순 경부터 학교일이 서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1월 초에 모든 학사일정이 마친다.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거기에 6학년 담임들은 원래 할 일이 많은데 1월 초에 아이들 졸업까지 시켜야 하니 그냥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도 어떻게든 피아노 연습을 하러 다녔다. 집에 와서 아이들 저녁 차려주고 밤 9시, 10시, 11시, 12시에 나갈 때도 있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을 연습해도 연습량은 턱없이 부족했고, 곡은 표현이 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았다. 무리가 된 탓인지 주말마다 아팠다. 조금 몸이 회복되면 다시 연습을 했는데 그때마다 여지없이 다시 아팠다. 


지지난 주도 고민고민을 하다가 결국 레슨을 쉬겠다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지난주를 지내면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레슨이야 한 번 받으러 갈 수는 있다. 문제는 연습이다.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체력이 안 되는 것이다. 선생님께는 톡으로 조심조심 말씀드렸다. 이미 계속 아프고 연습하러 센터도 못 가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바로 오케이 하셨다. 그렇게 나는 한 달 반 정도의 유예 기간(?)을 얻었다. 어제만 해도 좀 아쉬웠다. 아, 그래도 연습을 하기는 해야 하는 거 아냐? 피아노가 저기 2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데.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뚜껑을 열고 건반을 누르는 순간 5분은 50분이 된다는 것을. 지금도 연이은 회의가 끝나고 업무를 대강 마친 시각이 6시가 다 되었는데, 집에 언제 가서 아이들 저녁을 언제 해 준다는 말인가. 


이번 주는 가히 죽음의 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 회의가 있고 출장이 있었다. 연습을 거의 못 한 것은 당연하고 무리한 일정 탓에 오늘은 아예 앓아누웠다. 오후 반주는 다른 반주자에게 부탁을 해야 할 정도로 피아노를 어떻게 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후 예배를 건너뛰고 집에 와서 누웠다. 잠깐 일어나서 온라인 예배를 20분 정도 지각해서 참석하고 다시 쓰러져서 6시까지 잤다. 그리고 청소를 했다. (나는 아프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청소와 정리를 하는 버릇이 있다.) 교감선생님께 문자도 드렸다. 아침 일찍 병원 들렸다 출근하겠다고. 아예 안 갈 수는 없다. 내일도 중요한 회의가 3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잠깐 이별을 고한 것은 아무리 봐도 현명한 선택이다. 다음 주에 있을 정기 연주회를 취소한 것도 아주 잘 한 선택이다. 삶의 기쁨이고 활력이 되지만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는 거니까. 신랑마저 바쁜 요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기꺼이 좋아하는 한 가지에 이별을 고한다. 물론 영원한 작별이 아니라 잠깐의 헤어짐일 뿐이다. 1월 초에 만나자고. 2달간 많이 사랑해 줄 테니까.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바람둥이 같고 나쁜 여자 같다. 그런 거 아니야.... 흑흑흑.)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노 레슨 한 달만 쉴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