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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26. 2024

힘을 빼야 하는 이유

“이제 어느 정도 된 것 같은데 가장 큰 과제가 하나 남아있어요.”

2주 전 피아노 레슨을 갔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바로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에요.”

“그럼 꼭 해야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꼭 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노를 40년 가까이 쳤지만 늘 소리가 아쉬웠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만 치면 그 쨍쨍 울리는 소리가 귀가 아프다고 했다. (물론 오래된 피아노도 한 몫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 주의. 과거형.) 여러 가지 다양한 사유로 피아노 선생님이 보통 1년마다 바뀌었는데 제일 오래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소리는 ‘야무진 소리였다.’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꼭꼭 누르고 손가락이 하늘을 보지 않도록 손끝으로 치라고 배웠다. 정확한 박자에 맞출 수 있도록 등짝과 허벅지를 박자에 맞추어 엄청 맞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습관적으로 건반을 누를 때 저 끝까지 와닿는다는 느낌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제대로 친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분명히 잘 치는 것 같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음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만 거듭했다. 아무리 어려운 곡들을 치고 무대 위에서 화려한 듯 보이면 뭐 하나. 무대용 음악과 일상용 음악은 또 달랐다. “한 곡 쳐 주세요.”라는 부탁에 선 듯 꺼내서 가벼운 듯 무심하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곡이 내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지금 선생님이 내게 제일 많이 하신 말씀은 “힘 빼세요.”이다. 손가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소리의 공명이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을 펴고 손등을 아치형으로 만들고 제일 끝의 3번 관절을 구부리면서 당기듯 건반을 스쳐서 소리를 만든다. 치는 동시에 힘을 빼서 소리의 울림이 퍼지도록 한다. 힘을 빼다 보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졸렸다. ‘잘 빼고 있다는 증거겠지?’      


1년 가까이 “힘 빼세요.”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은 노력이 쌓였던 것일까. 갑자기 지난주에 소리가 부드러워지면서 뭔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기뻐하셨다. 그렇다고 물론 완성은 아니었다. 단 선율로 하나씩 가는 음들에 3도까지는 어느 정도 힘이 빠져서 공명이 잘 되는 소리가 나오지만 6도나 8도처럼 손가락을 많이 벌려 만들어야 하는 겹화음이나 옥타브로 진행되는 음들은 또 더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애가 탔다. 뭔지 아는데 되지 않는다. 네 명의 아이들을 번갈아 따라다니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이틀에 한 번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30분이라도 해 봐야지. 이 정도면 될까 싶어서 사흘 간의 연습을 마친 어제 녹음을 해 보았다.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다만 확연히 느껴지는 속도와 감정선이 미숙하다. 조성진의 연주를 들어 보았다. 정말 너무 쉽게 치는데 너무 잘 쳐서 그냥 홀린 듯 듣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음이다.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필요한 지점으로 가서 구간반복 듣기를 하듯 들어본다. 물론 그와 나의 간극은 비교도 할 수 없지만 하나 알았다. 그 빠르게 연타하는 음들을 조성진은 모두 다 힘을 자연스럽게 빼서 공명하는 소리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내겠다고 계속해서 힘을 주고 있으면 오히려 꽉 막히고 답답한 소리가 되어 버린다. 문득 삶도 그런 것일까 싶었다. 잘하려고 너무 힘을 주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쉼 없이 질주하는 삶이 아니라 하고 쉬고 하고 돌아보고 하고 힘을 빼고 다시 가다듬어야 나에게도 너에게도 울림이 있는 삶이 될 수 있겠지. 그렇다고 너무 힘만 빼도 소리는 만들어지지 않으니 그 중간 어디 즈음을 잘 찾는 것이 늘 과제다.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이제 조금 알겠다. 초등학교 시절 꼭꼭 눌러 치라고 그렇게 강조하시던 피아노 선생님의 야무진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결국은 다 이어져 있었는데 강산이 3번이 바뀔 만큼 피아노를 치고서야 조금이나마 감을 잡은 것이다. 아이고.....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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