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맛있는 땅콩크림빵이 보인다. 모카번도 있다. 한 입만 먹을까 싶어 빵 봉지를 여는데 순간 속이 울렁거린다. 저녁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평소 먹는 양을 생각하면 반도 안 먹었다. 뭔가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다. '이런 날도 있구나.' 하기엔 이미 한 번 겪었다. 작년 봄 코로나를 앓으면서이다. 이번엔 코로나가 아니다.
지난주 큰 아이가 아팠고, 셋째와 신랑이 컨디션 난조를 호소했으며 그제부터 둘째가 몹시 아팠다. 토요일 시험 감독을 하러 고사실에 들어가려는 순간 둘째에게 톡이 왔다. "나 38도가 넘어." 으아. 큰일이다. "아빠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해. 엄마 이제 시험 감독 시작이야."라고 보냈다. 알았다는 대답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시험 감독을 마쳤다. 오후에 나오면서 확인을 하니 아니.... 병원에 안 갔단다. 이미 병원 진료를 마쳤을 텐데. 오후에는 열이 내렸다고 했다. 계속 열이 내린 상태라기에 어쩔까 하다가 일요일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아프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늘 아팠지만 이번엔 상태가 정말 이상하다. 둘째도 열은 내렸지만 계속 안 좋은 상태라 둘이 결국 아침에 병원으로 향했다.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세워서 일찍 집을 나섰건만 8시 5분에 이미 대기시간 1시간 반이라고 했다. 어제 교감 선생님께 이미 문자는 보내놓았지만 1교시만 확보해 놓은 상태라 어쩔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우리 반도 독감이 휩쓸고 있다. 하루에 한 두 명은 기본으로 결석하고 있다.
9시가 넘어서 겨우 진료를 보았다. 둘째는 독감 검사를 하자고 했다. 나는 열은 없으니까 둘째 결과를 보고 하자고 하신다. 맘 같아서는 같이 하면 좋겠다. 둘째 검사 결과 나오고 15분을 또 기다려야 하니 학교를 가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냥 기다린다. 둘째는 A형 독감이었다. 나도 검사를 했다. 나도 A형 독감이었다. 아 그래서 입맛이 그렇게 없었구나. 아무리 아파도 잘 먹는 나인데 정말 먹고 싶다는 생각이 1도 들지 않는다. 배는 고픈데. 나는 수액을 맞기로 했다. 5일씩 약을 먹으면서 나을 시간이 없다. 무조건 빨리 나아야 한다. 오늘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해 놓고 오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나 혼자서 잘할 수 있으니까 대강 윤곽을 그려놓고 왔다. 학교에 가서 준비해 놓고 올까요? 하는 말에 교감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수액을 맞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진료 접수 마감'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11시 정도 되었는데 이미 오전 진료는 마감되었다고. 약값까지 포함해서 20만 원 가까이 나왔다. 옆에 있는 도넛 가게에서 딸에게 도넛을 하나 사주고 겨우겨우 집으로 왔다.
점심때가 다 되었으니 둘째에게 밥을 차려준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베이글 반쪽만 버터를 발라 겨우 먹었다. 둘째는 오늘 행복하다. 학교에 안 가서 행복하고 학원에 안 가서 행복하고 엄마랑 단 둘이 집에 있어서 행복하다. 아파도 좋단다. 각자 방에서 오후에는 잠을 좀 잤다. 얼마 안 잔 것 같은데 5시가 넘어가고 식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온다. 아파도 밥은 해 줘야지. 소고기 볶음밥이다. 약 먹으려고 몇 숟가락 먹고 끝. 분명 맛은 있었다. 그런데 양껏 많이 먹을 수 없다니 너무 슬프다. 이왕 먹을 수도 없는 날. 아프니까 좀 게으름 피워도 괜찮을 것 같은 날. 그래. 나도 오늘은 운동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고 다 안 할 거야!!! 청... 청.... 소.... 도...... 안 하고 싶은데.... 거실을 보니 심란하다. 먹고 싶은 것은 못 먹어도 어질러진 것은 참을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