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비워낸다

삶이 보내는 신호 한 자락

by 여울

독감 증상이 있은지 나흘 째. 아프니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운동은 물론이고 산책조차 어려웠고 추운 날 굳이 밖에 나가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피아노 연습도 할 수 없다. 피아노를 치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데 책도 안 읽힌다는 것을 알았다. 30분이면 다 끝날 내용이 1시간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읽을 수 있었고 사실 뭘 읽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말도 잘 안 나온다. 그동안 내가 복식호흡을 사용해서 발성을 했었나 보다. 글도 잘 안 나오는데 일단 쓰고 나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앉아서 책상을 보았다. 올해 초에 분명히 깨끗하게 책상을 정리하고 이에 관련된 글도 쓴 것 같은데 어느 사이 책상이 차 있었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처음의 그 모습은 분명 아니다. 이대로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좋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하고 싶었다.


연필꽂이가 하나둘셋넷다섯... 많기도 하다. 분명히 안 나오는 볼펜들 다 확인하고 버렸는데 언제 이렇게 많아졌지? 다시 확인한다. 과감하게 버리고 형광펜들도 버리고 작은 연필들도 다 버렸다. 아직도 볼펜이 한가득하지만 이 정도면 두었다 쓸만하다. 예전에 필사를 많이 하던 시절 볼펜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연필도 자잘한 것들은 눈 질끈 감고 버렸다. 아이들이 쓰기 좋게 책상 가운데 연필만 꽂아두고 그 옆에는 지우개들을 모아주었다.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받아온 작은 노트 같은 것들도 그냥 다 버렸다. 언젠가 쓰겠지 싶어 모아둔 자잘한 손바닥보다 큰 사이즈의 공책들이 몇 년째 쌓여있다. 플라스틱 바구니들도 한 곳으로 다 모아서 비워냈다. 정리를 한다고 사 둔 바구니들이 오히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저녁 시간 동안 책꽂이 한 칸을 정리했다.


다음 날은 옆 칸을 정리한다. 현관 옆 서랍장에서 안 쓰는 줄넘기를 과감하게 버렸다. 자잘한 장바구니도 6개는 버렸다. 필요 없는 전선들, 나사못들, 신발끈들, 액자들... 비워내니 밖에 널브러져 있던 것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작아진 아이옷은 눈에 보이는 대로 옷 수거함에 넣었다. 핸드폰 충전 케이블들을 모아서 통 하나에 담으니 정말 많다. 그동안 매번 충전선들이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여기저기 숨어있었을 뿐이었다. 미루었던 빨래 바구니도 해체했다. 입구 부분에 있는 철심을 빼내어 재활용함에 버리고 나니 현관이 조금은 깔끔해진 것 같다. 끙끙거리고 있으니까 큰 아이가 도와주었다. 그렇게 또 하루 저녁 시간이 갔다.


아픈 동안 하나씩 비워내는 과정은 또 의미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항상 채우려는 삶이었다. 항상 무엇인가 배우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를 채우는 것이 의미롭게 여겨지고 기쁨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채움을 중단해야 하는 순간 어째야 할지 몰라 막막함이 다가왔다. 아픈 고통도 컸는데 그로 인해 유의미한 무엇인가를 못한다는 답답함과 시간을 허비한다는 조급합으로 인한 어쩔 줄 몰랐던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시간을 가치로운 것들로 채우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공간도 꽉 채웠다. 어느 순간 채움이 지나쳐 짓누름이 된다고 느꼈다. 이제는 비운다. 시간이 과도하게 차오르는 순간 가장 좋아하는 것이지만 과감하게 빼내었다. 시간도 비우고 공간도 비운다. 비움으로 오히려 충만해진다. 바쁠수록 더 허전하기만 했던 마음이 여유롭게 차오른다. 건강의 하강은 이런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신호였을까. 아프고 싶진 않지만 내게 필요했던 순간일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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