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자녀면 공부 잘하나요

큰 아이가 특성화고에 갑니다.

by 여울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큰 딸아이 덕에 정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많이 하고 있고 많이 할 것 같다. 나는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은 어려서 스스로 한글을 뗐다. 이 '어려서'라는 나이가 5살 전이었다. 돌 무렵에 혼자서 '우유'라는 글자를 읽었다. 처음에는 그냥 아이가 우유팩을 자주 보니까 외웠겠지 하고 무심결에 넘겼는데, 다른 글자들과 섞인 속에서도 명확하게 해당 단어를 찾아서 읽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시작된 문자 인지. 돌 이전에 이미 알고 말할 수 있는 단어들의 수가 백여 개가 넘었고 알려주면 잘 받아들였고 표현하는 능력도 빨랐다. 나는 여자 아이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둘째와 함께 정말 무지하게 고생하면서 한글을 습득하게 한 후 알게 되었다.


큰 아이는 어릴 때 엄마표로 가르친 피아노도 잘 쳐서 대회도 나가 상도 받고,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도 거침없이 잘해서 특별상도 수상하고, 암송도 잘하고, 발레도 잘하고 이래저래 뭐든 시키면 잘하는 딸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았다. 그래서 더더 아이에게 채근하며 욕심을 내었나 보다. 아이가 하는 것이 자꾸 늘어갔다. 바이올린에 플루트에 피아노까지 하니 악기만 세 개였고 미술이며 한자, 국어, 수학, 영어는 물론이고 독서 논술에 발레와 방과 후 프로그램들까지 하니 정신이 없기도 했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당시 엄마표 영어로 꽤 유명한 블로거였다. 내가 아이에게 어느 순간 보여주기 위한 영어를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엄마표 영어를 그만두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게 하면서 강제로 끌어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의 기본 습관을 잘 잡아주었어야 했는데 그보다는 보여주는 것을 위해서 영어 공부에 강한 압박을 넣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이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즐기고 일본어 동영상을 볼 때도 영어 자막으로 볼 정도로 어느 정도 기본은 갖추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식의 공부는 하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몰아쳤던 것인가 싶어 반성하느라 강요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기본만 조금씩 하게 했다.


중학교에 가면서는 더더욱 호불호가 극하게 갈렸다. 본인이 좋아하는 과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아왔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에서는 중간 정도, 그리고 얼마 전 마지막으로 본 기말고사에서는 중하위권에 속하는 점수(수학 55점, 과학 35점)를 받아와 나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영어와 일본어는 거의 만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아이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딸아이를 가르쳤던 과외 선생님도 말해 주었다. remarkable 한 아이인데 왜 이렇게 lazy 한 태도로 지내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씩 던지는 질문 속에서 드러나는 아이의 사고방식과 대답이 정말로 자신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딸아이를 잘 아는 다른 여러 사람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부탁했어도 아이에게 공부 머리가 없다는 평은 아니었다. 그저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없을 뿐인데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2년 가까이 다닌 영어와 수학 학원도 얼마 전에 그만두었다. 학원 선생님조차 말했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안 하는 것이라고. 당분간은 학원을 안 다니는 것이 낫겠다고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춘기의 방황과 함께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이 아이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흥미가 없어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아이는 싫으면 그냥 톡 던져 놓았다. (여기서 조용한 ADHD가 아닐까 의심이 들어 병원도 예약한 상태이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했는데 사춘기가 오면서 정말로 그냥 놓아버렸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어떤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을 것 같은데 일반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대학을 갈 필요는 없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어쩌면 그 생각을 현실에 반영해야 할 때가 조금 더 빨리 올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답은 특성화 고등학교다. 근처의 고등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울여상과 미림전산여고는 모두 유명하고 집에서도 멀지 않지만 이미 수학을 놓아버린 우리 아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영어와 일본어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구사하고 스페인어도 조금은 할 수 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기꺼이 손길을 건넨다. 사회복지사나 선생님과 같은 직업이 어울린다. 조금 더 시선을 돌리니 외국어를 사용하며 사람을 응대하는 직업들이 보였다. 호텔리어나 항공승무원과 같은 관광 쪽의 분야이다. 그리고 집 가까이 이쪽 계열의 고등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여러 정보가 있는데 학교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체험의 날을 운영하고 있고, 입학 설명회도 여러 번이다. 아이는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고, 마을결합동아리까지 활동하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날까지 참여한 학생은 본인 혼자 뿐이었다고 했다. 입학설명회에도 가면서 특별전형에 필요한 조건들은 일단 다 갖추었다. 이제는 면접이다. 면접은 질문지를 미리 주는데 딸은 또 태평하게 있었다. 조금 걱정은 되었는데 아이에게 일단 맡겨두었다. 딸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바로 전 날에. 십여 개의 질문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답변을 서면으로 작성해 봐." 아이는 끙끙 거리며 답변을 작성했다. 독감 증세로 심하게 고생을 한 다음 날이었다. 학교도 못 갈 정도로 아팠는데 미루었던 질문지 답변을 작성하려니 쉽지 않았을 테지. 그날 나는 몹시 피곤했으나 아이와 함께 면접 연습을 하느라 결국 새벽 2시에 잤다.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시도하던 때라 몸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기분도 딱히 좋지 않았다. 그동안 미리미리 좀 하지!!라는 말이 계속 입까지 올라왔다.


다음 날 아침 큰 아이를 고등학교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바로 출근했다. 아이의 면접 시각은 9시였다. 물어보는 말에 딸은 울상을 지으며 말하기 싫다고 했다. 5명씩 한 조로 들어갔는데, 예상했던 것과 면접이 다르게 진행되어 당황했고, 옆의 아이들은 모두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는 것 같아 더 기가 죽고 말이 안 나왔다고 했다. 대답하기 싫어하는 딸을 내 버려두다가 밤에 조용히 물어보았다. 아이는 지원동기나 오고 싶은 이유는 잘 이야기했는데, 자신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준비한 말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번 경험으로서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면 그것 역시 값진 배움이라고 했다. 면접은 하루 전에 대강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고,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로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려면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고 많은 연습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문득 30년 전, 외고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난생처음 겪는 좌절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 혼란스럽고 수치스러웠던 그 어색한 감정이 다시 밀려왔다. 시험을 보는 순간, 내가 나름 혼자 준비한 과정은 다 어설프기 그지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았기 때문이다. 수학을 한 문제도 풀지 못하고 일렬 찍기를 한 것은 그 외고 시험이 처음이었다.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직접 부딪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원도 과외도 없이 혼자 누군가가 준 문제집으로 공부했던 나는 그때 공부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끝난 것. 일반고를 가면 이제 어떻게 다시 공부 계획을 짜야 하나.... 마음은 복잡한데 학교 일정은 바빠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회의하다 잠깐 틈이 있는 사이, 딸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합격했어!!" 울먹이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역시 맘고생을 하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했기에 축하한다는 짧은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회의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지원 인원이 많지 않아 그냥 대충 붙은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18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지원을 했고 그중에서 90명 정도 뽑는 것이었으니 대략 2대 1의 경쟁률이었던 셈이다. 집에서 걸어가도 좋을 정도로 가깝고, 시설도 좋고, 아이들의 눈빛도 (아침마다 올라가는 학생들을 보는 신랑의 말에 의하면) 또랑또랑 단정하게 살아있는 곳이다. 특성화고에 간다고 공부를 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다만 원치 않는 공부에 지나치게 매이는 대신 조금 더 즐겁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진로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아직은 가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길. 하지만 수 차례의 체험과 활동을 통해서 아이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길이다. 일반고와 달라서 나는 더 모른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더 아이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너도 나도 모두 처음 가보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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