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같이 집밥을 먹던 저녁

by 여울

요새는 퇴근을 해도 집에 아이가 한 명 많아야 두 명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금요일에는 야구 훈련 하는 셋째를 제외한 세 명이 있을 때가 있다. 어제는 친정어머니가 주신 삼겹살과 목살을 구웠다. 그냥 구워줘도 잘 먹겠지만 뭔가 좀 특별하게 해 주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데리야끼 소스가 떠올랐다. 슬쩍 둘러보니 싱겁다. 한 번 더 둘러도 싱겁다. 두 바퀴 정도 더 두르니 그제야 제대로 맛이 난다. 어딘가 친숙한 불맛이라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닭꼬치 구이에서 나는 맛이었다. 양파도 넣고 부추도 넣고 파도 넣고 양파 싹도 넣었더니 비주얼도 괜찮다.


계속 배고프다는 막둥이라도 먼저 줄까 하는데 셋째가 들어왔다. 큰 아이는 아직 입맛이 없고 고기를 먹으면 울렁거릴 것 같다고 해서 나중에 배고프면 먹으라고 했다. 셋이서 둘러앉는데 둘째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 메뉴를 묻고 엄마가 집에 있는지 묻는다. 기다릴까? 하는데 이미 셋째, 넷째는 식탁에 앉아 있다. 고기를 좀 남겨두고 먼저 담아 주었다. 아이들은 신나는 마음으로 밥을 먹기 시작한다. 다른 반찬은 꺼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김치 외에 주 반찬은 많아야 두 가지. 그냥 주 메뉴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에너지를 줄이고 있다. 밥을 3분의 1 즈음 먹었을 때 둘째가 돌아왔다. 약간 식어가는 프라이팬의 고기를 다시 서둘러 데워서 올리니 김이 모락모락 난다. 아이들은 신나게 먹었다. 둘째와 셋째는 밥을 두 그릇씩 비웠다. 내가 먹어봐도 맛있었다.


다 같이 먹는 식탁에서 핸드폰 사용은 금지이다. 셋째가 슬쩍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둘째가 목격했다. "쟤 핸드폰 배경화면 자기 얼굴이다!" 그 말에 머쓱하니 웃으며 "내 얼굴 잘 생긴 걸로 해 놨지."라고 한다! "어디 좀 보자!" 셋째는 기필코 핸드폰을 사수했다. 막상 설정해 놓고 나니 쑥스러웠던 것이다. 둘이서 킥킥대면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셋째는 부지런히 핸드폰 설정을 바꿨다. 그리고 바뀐 배경화면은 샤인 머스켓. 친정 엄마가 주신 샤인머스켓이 하도 거대해서 세로로 세워졌는데 그것으로 바꿔 놓았다. 그게 또 웃겨서 우리는 실없이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코코아를 뜨겁게 한 잔 타시더니 "아, 나는 베란다에 가서 먹어야겠다."라고 하며 굳이 그 추운 베란다 문을 열고 나선다. "왜???" "갬성을 즐겨야겠어." 그렇다. 이 아이는 우리 집 네 명 중에서 유일하게 발라드를 즐겨 듣는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탄 풍경만 한 시간씩 틀어놓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전람회를 알려 줬더니 한동안 기억의 습작이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요즈음엔 우연히 들은 별 보러 갈래에 꽂혀서 이젠 나도 가사를 외울 지경이다. 혼자서 '갬성'을 즐기며 코코아를 먹고 추위에 덜덜 떨며 들어온 셋째를 보고 우린 또 웃었다. 오늘은 저녁 피아노 연습을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아까 나한테 한바탕 잔소리를 들었던 막둥이가 오래오래 시간이 걸려서 설거지를 끝내자 나는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냉장고 청소를 하고 내일 먹을 우거지 감자탕을 끓이고 분리수거와 바닥 청소를 끝냈다. 내가 청소하고 요리하는 동안 이리저리 토닥토닥거리던 아이들은 모여서 스물하나스물다섯을 보면서 또 다 같이 어유어유 이러고 있었다. (신랑은 여전히 늦게 들어오지만) 아이들 네 명이 다 같이 모여 앉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괜찮은 저녁이었다.






사족.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은 다시 속 터지는 일들의 연속....... 괜찮은 저녁은 정말 하룻밤의 꿈이었다. 크흑.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중3 초3 두 아이에게 소리 지르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