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한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 나는 같이 화를 내지 않아 동조하지 않고 공감해주지 않는 것처럼 보여 더 화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와서 아까는 내가 감정이 격했다고 사과를 하는 그를 보면 이젠 화를 낼 기운도 없다는 것을 본다.
밤 11시. 나와서 단지 안을 걷는다.
밤의 시간은 차분하고 고요하다.
걷다가 감정이 차올라 소리 죽여 울기도 한다.
어차피 나의 삶. 내가 살아가야 하는 나의 삶.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삶.
가끔은 버겁다. 그의 경제적인 무능과 무관심으로 가정의 삶의 무게도 내가 더해야 하는 듯 보일 땐 아주 드물지만 침잠한다.
그래도 괜찮다. 난 이 하룻밤이 지나면 다시 도약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오늘 밤의 일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자 도전이다. 늘 그래왔듯이.
조금 더 덜어내자. 조금 더 더해보자.
격동을 덜어내고 냉철한 시선을 더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이고 최적인지 들여다보자.
그리고 단아하게. 세련되게. 환하게.
하나씩 걸어가기.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