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테트리스 고수다. 그냥 단순 테트리스 아니고 그 옛날, 삼십 년 전 한게임에서 나왔던 그 온라인 테트리스 게임의 고수다. 지금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지존까지 올라갔던 것 같다. 중학생 때 집에 컴퓨터가 생겼고 우연히 동생 따라 입문한 테트리스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착착 조각을 맞춰가는 것 이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팀 전하고 ㄱㄱ라는 약어를 치면서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거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어느 날 과감하게 끊었다. 나는 만화책도 아주 열심히 봤는데 매달 나오는 윙크는 나의 최애잡지였다. 윙크와 댕기는 당시 소녀들 만화계의 양대 산맥이었는데 나는 윙크가 더 좋았다. 그래서 매달 열심히 사서 보고 책상 밑에 꼭꼭 잘 보물처럼 쟁여두었다. 그리고 고3이 되던 해 만화도 끊었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딱 끊을 수 있다.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T 지?"
"응."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러다 굉장히 냉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펑펑 울고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 F인가 싶은데 또 아닐 때는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끊어낸다. 그리고 보통은 친구 표현에 의하면 logical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이다. 그런 내가 오늘은 게임을 했다. 가끔 읽는 웹소설 다음 편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데 기다리면 무료로 읽자니 3시간에서 하루를 기다려야 한다. 감질난다. 모아놓고 볼 때도 있지만 2주 전인가? 몹시 궁금했다. 무료 캐시가 필요한데 무슨 게임을 해서 레벨 업을 하면 무려 2500원어치의 캐시를 준다고 한다! 그래서 다운로드하고 적당히 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냥 몇 번 대충 클릭하면 되는 게임이 아니었다. 수학퍼즐에 가까운 계산하는 게임으로 대충 누르면 절대 레벨업이 되지 않는다. 은근 재미는 있는데 레벨업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대충 접어두고 잊고 있었다.
오늘 나는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를 한다고 바빴을 텐데 게으르고 싶었다. 지난주 내내 밤늦게까지 일하고 낮에도 잠깐 눈도 감지 못하고 어제도 늦게 들어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거였나 싶었다. 누워서 책을 읽다가 그도 심드렁해져서 핸드폰을 뒤적이는데 문득 잊고 있던 게임앱이 보였다. 어디 수학 퍼즐이나 풀어볼까 싶어서 앱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맞춰지지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넘어가기도 했다. 시작한 시각이 5시 40분 정도.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는데 나는 "잠깐만."이라고 하면서 6시 반까지 버텼다. 떡국은 금방 끓인다. 떡국 물을 올려놓고도 나는 적당히 게임을 했고 먹고 나서 또다시 게임을 했다. 잘 될 때는 쾌감이, 안 될 때는 약이 올랐다. 내가 이걸 못 푼다고? 하는 마음에 몇 번을 리셋했고 광고도 봐야 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9시 40분이다.
"엄마가 게임을 해요?"
"엄마 이제 그만해요. 엄마 중독됐다."
네 명이 번갈아 가면서 와서 말을 거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게임을 했다. 나중에는 다 같이 풀었다. "이래서 내가 게임을 안 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계속했다. 머리로는 이제 멈추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반짝이는 코인을 받고 별을 받고 그러고 나면 자동으로 다음 게임이 펼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팝업창이 떴다. '2500 캐시를 받았습니다!' 아니, 이게 아직도 유효한 거였다니. 그러니까 최소한 5시간 이상은 플레이를 해야 그들이 정한 레벨업 조건에 부합하고 그 정도는 플레이해야 캐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작은 화면을 계속 들여다봤더니 머리는 더 아픈 것 같고 눈은 뻑뻑하고 무엇보다 기분이 매우 나쁘다. 나의 귀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도 되는 것인가? 딱 30분 정도만 하고 끝냈다면 오히려 '재미있었다.' 정도의 소감과 함께 끝났을 것인데 3시간도 넘게 했으니 스스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만화도 잘 보지 않는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한 번 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 이해는 된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앉아서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면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지는데. 그래서 글을 쓰다 말고 앱을 삭제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깔린 앱들이 있었다. 게임 앱을 다운로드하면 캐시를 준다고 해서 받아놓고 보통 바로 삭제를 누르는데 모종의 사연으로 삭제를 안 했나 보다. 다섯 개 정도 깔려 있는데 갑자기 둘째가 오늘 하던 수박 키우기 게임이 보인다. 어디 한 번? 마음에 클릭을 해 본다. 아니, 이렇게 쉽고 간단하면서 재미있는 게임이 있단 말이지? 나도 모르게 열심히 수박을 만들고 있다. 멜론까지는 만들었는데 수박이 쉽지 않다. 겨우 하나 만들어서 뿌듯한데 아이들이 말한다. "수박 두 개 만들기 힘들어요." 수박을 두 개도 만들 수 있단 말이야?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글을 쓰다 말고 수박을 키우고 있었다. 딱 한 판만 더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이야.
이거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나름 냉철하다고 자부하는 나 역시 폰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날마다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이유를 정말 알겠다. 물론 아이들은 잠깐 하고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클리어해야 하니까. 나만 해도 이 글을 쓰다 말다 수박을 키우느라 12시가 다 되어 간다. 수박 두 개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여기서 그만. 바로 삭제각이다. 딱 한 판만 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