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지만 출근을 합니다. 어제는.... 아....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교무부장님이 보낸 안전 관련 메시지를 아이들에게 안내하고 학부모님께도 안내한 것이 이렇게 큰 파장이 되어서 돌아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학부모님의 거센 민원 전화에 교감 선생님 연구부장님 모두 5시 넘어서까지 퇴근을 못하시고 회의를 하고 계셨어요. 모두의 사정을 들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원칙과 규정이란 것이 있는 사회에서 이 부분이 참 어렵습니다. 1학기 내내 시달렸던 것도 바로 이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는 학부모의 요구를 학교는 발휘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또 이럴 줄이야....
사실은 담임의 마음은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학부모님의 요구를 정말 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보게 되는 상황일 때도 있고, 누구 한 사람에게만 허락을 해 주면 다른 아이들이 '왜 나는 안 돼?'라는 의문을 갖게 되는 상황일 때도 있습니다. 어제의 일은 저는 들어주고 싶은데 학교로서는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이라 집에 와서도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너무 심란해서 밤 12시에 나가 집 밖에서 한참을 걷다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늦게까지 잘 것 같았는데 - 여기서 너 아침형 인간 시도 중 아니었냐.... 이런 궁금증도 드시겠지만 여하튼 정말 늦게까지 자고 싶었습니다. - 슬프게도 7시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눈은 떠졌으나 몸이 일어나 지는 것은 아니었어요. 30분 정도 더 자려고 노력하면서 토요일에도 나가는 아이들을 하나씩 보냈습니다. 셋째는 야구하러 학교로, 둘째는 토요일만 다니는 미술학원으로, 그리고 저도 옷을 챙겨 입고 학교로 향합니다.
독감의 여파였는지 그동안은 모니터를 들여다보기만 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의 속도가 나지 않았습니다. 성적처리와 보고서 제출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급한 것이 하나 있으니 문집입니다. 아이들에게 졸업 선물로 문집을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아직 편집 시작을 안 했어요. 지난번 토요근무 때 어떤 자료를 실을지 정리는 했는데 사진 찍고 스캔 뜨는 일은 미루었습니다. 오늘은 가자마자 사진부터 찍습니다. 하나하나 사진 찍고 간추려내고 전송해서 드디어 컴퓨터에 다운까지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사진 수가 많지는 않았어요. 80장 정도. 이제 패들렛에 접속합니다. 일 년 내내 써 온 세줄 쓰기와 일기를 '긁어' 모아서 한 군데 담아야 합니다. 두 시간 정도 작업을 해서 드디어 4월 분량까지 옮겨 담았습니다. 이제 5월, 6월, 7+8월, 9월, 10월, 11월 이렇게 6달 남았으니 서너 시간만 더 작업하면 될 것 같아요. 역시 시작이 반 맞습니다. 무조건 이번 주 안으로 끝내야 늦지 않게 줄 수 있습니다. 작년에 영어문집을 만들어 보니 12월, 1월은 인쇄계의 피크타임이라서 최소 2주는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지금도 늦었어요........
그렇게 작업하고 2시가 다 되어서 학교를 나섭니다. 오랜만에 토요일 오후 시간을 친구와 보내기로 했어요.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미국의 맛이 그리울 때면 오라는 수제 버거집으로 갔습니다. 아프고 나서 사라진 입맛과 함께 식사량도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버거 하나 다 먹기가 너무 힘들어서 슬펐습니다. 오늘 저녁은 다 먹었어요.... 둘이서 카페로 가는데 토요일 오후 빈자리 찾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정말 남은 자리가 없거나 앉기 매우 애매하게 생긴 곳뿐이었어요. 카페를 다섯 군데나 들린 끝에 겨우 조용한 곳을 찾았어요. 둘이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머나, 집에 가서 아이들 저녁 챙겨줘야 할 시간입니다. 날도 따뜻하니 산책하기 좋은 오후가 이렇게 금세 지나가 버렸어요.
저녁 챙겨주고, 설거지하고, 정리를 조금 하고 나니 몸이 신호를 보냅니다. 30분 정도 살풋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떴는데,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나가면 춥고 힘드니까 계속 이불 안에 있으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저녁도 안 먹었으니까 셋째에게 나쵸 세 개만 달라고 해서 조금씩 베어 먹고, 막둥이에게 귤 하나만 갖다 달라고 해서 또 귤도 하나 까먹고 나니 좀 힘이 생겼어요. 모아두었던 웹소설 8편 정도를 몰아서 보고서야 이제 이불 밖으로 나왔습니다.
어제까지 엄청난 기세로 찬장을 비우고 책장을 비우고 청소를 했는데 오늘은 손 까딱하기도 싫어요. 이런 날은 소파에 반쯤 누워 소설책 한 권 읽으면 딱일 텐데... 유감스럽게도 저희 집에는 소파가 없습니다. 책장을 늘리면서 소파를 처분해 버렸는데 요새는 너무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 방학 제 목표는 책장 세 개 없애고 소파를 다시 들여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뒹굴거리면서 책을 보면 정말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최고로 누릴 수 있는 호사 같아요. 비록 소파도 없고 막둥이와 인생게임을 놀아줘야 하지만 어쩐지 기분을 내고 싶은 맘이 들어요. 그래서 브금으로 크리스마스 캐럴 브금 틀어놓습니다. 정말이지 마냥 게으르고 싶은 토요일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