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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집순이이고 싶다

by 여울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필수 조건은 혼자서. 그럼 신나게 집을 치울 수 있을 것 같다.


재작년인지 신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밤새서 집을 치우다가 몸살이 난 적이 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시간 동안 마음껏 꺼내고 정리를 하는데 체력이 달리니 시간은 길어지고 식구들이 올 시간이 되니 마음은 급해지고...그렇게 밤새 치우고 나서 병이 나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집은 어느 사이엔가 다시 원상태로...


이번 방학은 거의 두 달이라 이 기나긴 시간 동안 본격적인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꾸었는데 막상 지내보니 예상보다 훠얼씬 바빴다.


일단 작년 연말에 넘어져서 심하게 다친 여파가 좀 컸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쉽게 지쳤다. 그리고 매일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야구하는 셋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일이었고, 몸이 나을 때 쯤에는 교원학습공동체 수채화동아리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다쳐서 쉬는 동안 못 그린 과제 그림들을 새벽까지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채화 전시회가 끝나니 원서읽기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회복되어 얼마전 부터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집에 있는 전집들도 일부 정리를 했다. 상당히 라고 썼다가 일부로 정정한 것은 아직도 남은 책이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씩 감질나게 원서와 전집을 정리해서 언제 빈 자리를 만들고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 있나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좌절도 했는데 군데군데 이가 빠진 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속도가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방법은 이러하다. 책장의 두 칸 정도를 확보한다. (보통 전집은 책장의 두 칸이면 넉넉히 들어간다.) 그 안에 번호대로 책들을 꽂으면서 비어있는 번호를 확인하다. 10권에서 7권, 5권...마지막 1권이 안 보여서 너무나 애가 탄다. 한 권이라도 없는 전집은 가치가 확 떨어지기 때문이다. (없는 줄 알고 10분의 1가격에 내 놓았다가 책을 건네기 직전에 찾았는데 그냥 그 가격에 드리고 몇날며칠을 끙끙 앓았던 적도 있다.ㅠㅠ) 그리고 가능한 빨리 비우기 위해서 가격도 많이 내렸다. 이 가격에도 안 나가면 그냥 학교에 가져다 두고 아이들과 읽으려고 했는데 가격을 내리니 책들도 잘 나가더라....


그렇게 열심히 당근을 하고 아이들과 방학을 충실하게 보내려고 하고 내 일도 같이 하다보니 다음 주면 개학이라는 사실....!!! 내...내 방학은.....

이대로 일주일만 집에서 있으면 너무너무 좋겠는데 출근일이다. 대학교 절친도 이번 방학 때는 못 만날 정도로 둘 다 바빴다.


모두가 바쁘기 때문에 바쁘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라고 나긋하게 말씀하시던 어느 분이 생각난다.


이번 방학이 지나면 집이 확 달라져서 깨끗하게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그런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정리하기 쉽게 되었고, 아주 약간이지만 일의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늘 책과 다양한 잡동사니들로 가득차 있던 책상에 빈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에 뭔가 올려져 있더라도 치우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손쉽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도 달라진 점이다. (그 전에는 공부를 식탁에서 했다.)


Atomic Habits(아주작은습관의 힘)의 마지막 장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In the beginning, small improvements can often seem meaningless because they get washed away by the weight of the system. Just as one coin won't make you rich, one positive change like meditating for one minute or reading one page each day is unlikely to deliver a noticeable difference.


작은 것 하나씩을 매일 한다고 해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한다.


Gradually, though, as you continue to layer small changes on top of one another, the scales of life start to move. Each improvement is like adding a grain of sand to the positive side of the scale, slowly tilting things in your favor.


그렇지만 점진적으로 작은 변화를 켜켜이 쌓는다면 긍정적인 쪽으로 저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Eventually, if you stick with it, you hit a tipping point. Suddenly, it feels easier to stick with good habits. The weight of the system is working for you rather than against you.


그리고 마침내는 변환점에 도달해서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쉬워진다는 것이다.


아직 나는 습관을 쌓아올리는 중이다. 집안이 한 눈에 정리되어 보이는 극적인 효과는 없지만 날마다 정리하고 유지한다는 시스템을 지키고 있고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 집순이가 될 수 없다해도 괜찮다. 일주일간 몰아서 정리하고 다시 어지러진 상태로 돌아가는 예전보다는 조금씩 정리하는 지금이 나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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