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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할 때는 마스크를

by 여울

하루에 십 분만 타이머를 맞춰놓고 정리를 하라... 는 책의 글귀가 생각이 났다. 아이와 치과와 남성전문헤어샵을 차례로 돌고 왔더니 몸이 힘들었지만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이 있다. 하나도 안 힘들어도 손가락 까딱하기 싫은 날도 있고 몸은 파김치인데 그래도 어떻게든 움직이게 되는 그런 날. 아마 오늘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시작은 안방 옷장 문 손잡이에 걸린 내 옷들이었다. 옷장 안에 넣어두지 않고 대강 문 손잡이에 걸어놓은 옷들이 볼록하니 튀어나와서 더 이상 걸 수 없을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실 겨울 옷을 먼저 정리를 해야 하는데 날이 이상하게 춥다 덥다를 반복하다 보니 겨울옷과 봄옷 여름옷이 혼재된 상태로 있었다. 거기에 결혼 전 입었던 옷들까지 애매하게 겹쳐 있어서 정리를 하자면 정말 맘먹고 해야 하는 상황.


일단 액세서리와 잡화를 보관하는 선반부터 시작했다. 사실 옷은 조금 더 미뤄두고 싶었다. (나의 안 좋은 습관.) 언젠간 쓰겠지 싶어서 가지고 있던 파우더 퍼프와 오래된 자외선 차단 파우더도 과감하게 버렸다. 오래된 증명사진도 버렸다. 곳곳에 놓인 습기 제거제도 꺼내고 안 쓸 것 같은 액세서리들도 조금 정리했다. 나름 수납 정리하겠다고 가지고 있던 불필요한 상자들과 바구니도 쓱쓱 빼내었더니 공간이 좀 더 넓어졌다.


그리고.... 아직도 수많은 액세서리들은.... 잠시 들여다보다가 일단 한 곳에 모아두었다. 중학생 딸아이들이 귀걸이며 목걸이 등등을 달라고 했기 때문에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다. 요즘 손이 자주 가지 않아 한 켠에 치워둔 장신구들은 확실히 내가 하기엔 '영'한 감이 있었다. 액세서리 정리는 지금 방법을 찾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어느 정도 진척이 되면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서 같이 분류하고 과감하게 버릴 생각이다. (사실 나는 아직도 반짝이는 투명한 것들을 좋아해서 그냥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하나 버리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옷을 그렇게 많이 뺐는데도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진짜 미니멀리스트 분들처럼 상의 몇 벌, 하의 몇 벌 이렇게는 못하겠다. 그래도 옷장 한 칸 반 정도로 줄여서 괜찮지 싶었는데, 옷장 문을 열고 스캔하면 아직도 빼내야 할 옷들이 최소 열 벌은 눈에 띈다. 온라인으로 샀는데 막상 입어보니 너무 크거나 스타일이 맞지 않았는데 반품 시기를 놓친 것도 있고, 살이 빠진 다음 입어 보니 어울리지 않는 것들도 있고, 젊을 때는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어긋나는 옷들도 있다. 살이 빠지면 뭐든 다 잘 어울릴 줄 알았는데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옷이 들어가지만 지금의 유행과 맞지 않는 것도 있고 색감이나 디자인이 지금의 나와는 맞지 않았다.



한참 정리하다 보니 아차 싶어 얼른 마스크를 꼈다. 지난번에 마스크 없이 섣부르게 도전했다가 며칠 몸살을 앓았던 기억 때문이다. 옷 먼지에 특히 예민해서 옷 쇼핑을 할 때는 사실 좀 힘든 부분이 있다. 나는 절대 의상실 직원이나 옷 가게 직원은 못하겠구나 생각을 했다. 거기에 미루어두었던 옷장 안 쪽에는 켜켜이 숨은 먼지들이 쌓여있었다. 덴탈 마스크를 찾아서 끼니 한결 편해졌다. 정리의 속도도 빨라졌다. 이제 9시가 넘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무리를 해야 내일 출근에 지장이 없다.


재활용 쓰레기를 셋째와 함께 배출하고 학교에 가져갈 물건들을 정리해 놓으면서 생각했다. '다음엔 마스크 없이 정말 10분 안에 끝낼 수 있기를.' 오늘은 비록 1시간 반 정도 걸렸지만, 조금씩 지속적인 정리가 들어간다면 10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겠지. 대청소나 이사를 하는 날이 아닌 일상적인 정리를 할 때 부디 마스크 없이도 '깔쌈'하게 끝낼 수 있는 날이 올해 안에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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