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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한 결과 그러고 나서 얻은 것은..

by 여울

아침부터 몸이 좀 좋지 않았다. 약간의 콧물이 나기 시작해서 단순히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쐬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싶은데 25명의 6학년 아이들이 뿜어내는 기운 속에 있는 아이들은 제발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긴팔 카디건을 입으면 덥고 답답하고 벗으면 춥고. 입었다 벗었다 사이를 우왕좌왕하다 결국 입는 것으로 낙찰했지만 콧물은 멈추지 않아서 결국 보건실에 가서 지르텍 한 알을 얻었다. 그럼에도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감기는 아니고 몸살이구나. 조퇴가 절실했는데 6학년 수업이 끝나면 거의 3시.... 잠깐 정리하고 수업 준비하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무의미했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에는 정시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5시 반에서야 교실을 나섰다.


집에 와서 저녁 준비를 하기 전에 냉동실에 있던 어차피 아무도 안 먹는 곶감을 애써서 먹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초콜릿을 세 조각이나 먹었다. 생리 전이라 그런 건지 몸살 기운에 당이 필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몸에서 마구 받아들였다. 그 힘으로 냉동실과 냉장실을 뒤져서 저녁 반찬을 만들었다. 얼려둔 삼겹살이 한 팩, 작년에 고모가 주신 김치가 아직도 거대한 '봉다리'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거기서 한 포기김치를 꺼냈다. 냉동실 정리하다 발견한 쥐눈이콩을 넣어 밥을 올리고 그 사이에 쓱쓱 김치찌개를 만들고, 남은 너비아니를 구워서 막둥이와 신랑이 먹을 반찬도 만들고 나서는 그만 뻗어버렸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냉동실에 무엇이 어디 있는지 파악이 되어 조금 수월하게 할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시간 남짓 어설픈 쪽잠을 자는데 막둥이가 와서 계속 깨우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셋째가 와서 겨우 일어나긴 했는데 아직도 어지럽다. 이건 그냥 단순히 냉방병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사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새 작정하고 치우겠다고 무리를 했다. 월요일부터 청소와 정리에 힘을 쏟아부었는데 연이어 딸아이들 방을 마스크도 없이 치운 것이 좀 타격이 컸나 보다. 거기에 찬바람을 예고 없이 쐬고 점프업 수업과 교학공 수업까지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던 것이 한 원인이지 싶다.


저녁에 누워있던 것이 힘이 되어 조금씩 정리를 더 했다. 일단 부엌과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 그리고 딸아이들 방은 아직까지는 안전지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했던 그 방은 이틀에 한 번씩 점검하면서 유지를 시키고 있다. (제발) 아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그래도 한쪽 귀퉁이가 정화가 되어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살짝 의지가 된다. 온 집안이 어지러울 때 몸까지 아프면 그 어마무시한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어 몰려오는데 그래도 저쪽이 정리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살짝은 숨을 트이게 해 준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껴보고 있다.


책장이 있는 서재형 거실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책들도 더 비워내서 다시 소파를 들여놓고 쉼이 있는 거실로 만들고 싶다. 어쩌면 몇 번의 몸살을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몸살 없이도 잘 유지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싶다. 아니 올 것을 알고 있다. 필라테스를 처음 시작할 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죽을 듯이 아팠다. 그 간격은 점점 벌어졌고 나중에는 아프지 않고도 운동을 잘할 수 있었다. (정말 나가기 싫지만) 셋째 버스카드 충전하러 가는 길 작은 화분 두 개를 더 비워야겠다.


열심히 하니까 몸살도 오는 거다. 잘하고 있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되고 있으니 한 번씩 쉬어가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마음은 괜찮다. 좀 더 자고 좀 더 쉬고 나서 다시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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