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지만 역시나 한가득 자리 잡은 곰팡이였다. 몇 년 전... 성과급을 받았을 때 우연히 한 이웃블로거님이 인덕션을 중고로 내놓으시겠다고 했다. 150만 원을 뛰어넘는 그 중고 인덕션을 왜 그 가격에 샀을까 지금은 너무나 후회가 되지만 그때는 원가가 200도 넘었다는 말에 그만 너무나 혹해서 그리고 가스레인지가 아이들 폐에 안 좋다는 말에 미친 듯이 사고 싶었다. 원래는 있던 가스레인지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놓고 싶었지만 집주인이 반대를 하여 (솔직히 설치된 지 20년 되어 찌든 때가 아무리 닦아도 안 벗겨지는 그 가스레인지를 다음 세입자인들 쓰고 싶을까 백 번 생각해도 의문이고, 우리가 이사 나가는 대로 주방을 바꿀 예정이다. 심지어 비용도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아끼시려는 마음은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새로 산 인덕션은 갈 곳을 잃고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한동안 정말 잘 썼다. 그러다 서서히 안 쓰게 되면서 그냥 애물단지가 되었다. (물론 나는 이사 가면 잘 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건조기를 사야겠어."
그리고 이번 학기 집안일이 거의 전적으로 내 차지가 되면서 몇 년간 너무나 사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이 되지 않았던 건조기를 사기로 결심했다. 가정의 평화와 내 마음의 평안과 시간의 확보를 위해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을 자리는 인덕션이 있던 곳. 7년간 쌓인 짐과 묵은 먼지를 모두 닦아내야 하는 큰 작업이라 짐 옮기는 것만 신랑이 도와주기로 했다. 예상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인덕션이 붙어 있던 벽면을 타고 뒤덮은 곰팡이를 보는 순간 둘 다 할 말을 잃었는데 신랑은 그냥 두라고 했다. 아니..... 안 봤으면 모를까 봤는데 어떻게 그냥 둔다는 말인가. 예전에 사둔 곰팡이 제거 젤이 있어서 그것으로 닦겠다고 했는데도 그대로 두라고 하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면 오늘 마침 재량휴업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을 조금 여유 있게 먹고 나서 본격 청소에 돌입했다. 일단 곰팡이 제거젤을 바르고 나서 하나하나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인덕션을 내놓을 거실 앞 주 베란다를 치우고 현관을 치우고 재활용쓰레기를 분리하고 거실 바닥을 치우고 화장실 간이 청소까지 하나하나 미션 클리어 하고 나니 11시 반. 드디어 곰팡이와의 전쟁이다. 닦아내는데 아뿔싸. 더 빨리 닦았어야 했을까??? 생각처럼 잘 닦이지 않았다. 흘러내린 젤로 열심히 닦아내면서 7~80퍼센트 정도는 제거한 것 같은데 나머지가 벽에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친구를 만나러 나가야 할 시간이고.
광고에서는 뿌리고 나면 그냥 쓱쓱 없어지던데 역시... 광고는 광고일 뿐이었다.... 그래도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고 추가로 사다가 한 번 더 해봐야겠다. 누군가 쏟아놓고 방치해 둔 화분의 흙들도 싹 다 치웠고 마구잡이로 자란 화분들도 적당히 가지치기 및 나누어 담았다. 그렇게 치우다 보니까 또 어디를 손 대야 할지 알 것 같은데 내일부터 출근이다. 아이들 없이 신랑 없이 혼자서 이렇게 집을 치우면서 어질러진 내 마음도 같이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만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할 것 같다.
묵은 먼지와 곰팡이를 닦아내고 나니 공기의 흐름도 상쾌한 것 같고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도 더 화사하고 상큼한 것 같다. 오늘은 정말로 청소하기 좋은 날이었다. 들어내고 정리하면서 비워야 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이 느낌이 참 좋았다. 나는 참 못 버리는 사람이지만 내년 1월 이사를 목표로 천천히 정리하면서 비워내는 것이 가능하겠다는 예상이 든다. 간결해진 짐과 그만큼 간결해진 마음으로 또 다음의 목표를 향해서 갈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이제는 저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구우면 집에 냄새가 덜 배겠지. 음하하...... 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