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방문을 열 때면 정말 큰 맘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 방을 거의 가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 물론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종종 목격하기는 하지만 얼른 시선을 돌려 외면하면 잊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 하지만 일단 발을 디딛는 순간 더 이상은 거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들어가는 일은 정말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않는다.
중학교 3학년 1학년 두 딸아이가 쓰는 방은 정말 정리가 1도 안 되어 있다. 분명 지난달 반짝반짝하게 청소와 정리를 해 주었는데 어느 사이 다시 우리 집 최대의 쓰레기장이 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월요일 냉동실을 정리하고 나서 오늘은 냉동실 문 칸을 좀 정리했다. 설거지를 하고 부엌과 거실 바닥을 청소하고.... 몇 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었다.
일단은 겨울옷들이나 추려서 옷상자에 담아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겨울옷을 모으다 보니 작아진 옷들이 들어왔고 안 입는 옷들이 들어왔다. 옷을 분류하고 나누어 담고 나니 곳곳에 널려있는 양말들이 들어왔다. 양말을 벗어서 매트리스 주변에 쏙 밀어놓고 그렇게 맘 편하게 잠을 자나보다. 어쩐지 양말 짝이 안 맞아도 너무도 안 맞더라니....
빨래해야 하는 것들을 또 모아서 방 앞에 던져놓고 나니 이번에는 널려진 학습지들이 들어왔다. 버릴 것들을 추려서 분리수거함에 넣고 나니 이번엔 다른 잡동사니들이 들어왔다. 과감하게 버렸다. 나무로 된 오르골, 살짝 늘어난 머리끈, 별사탕을 먹고 난 빈통, 그리고 머리카락..... 어찌나 많은지 아예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와서 몇 번을 쓸어 담고 담았더니 그제사 끝이 났다. 하도 먼지가 많아서 마스크를 안 쓴 것을 후회했다. 하도 힘이 들어서 청소하다 말고 식탁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으니 셋째가 와서 도닥도닥해 주면서 "엄마가 왜 치워줘요? 어차피 또 금세 더러워질 텐데." 그래... 나도 안다..... 그런데 어쩌니....ㅠㅠㅠ
아이들이 정리를 잘 못하는 데에는 내 탓이 90퍼센트인 것 같아서 이렇게 치워주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 방에 있는 책장의 책들은 내 책이 반 이상이고, 내 악보가 반 이상이라서 내 물건들 다 들어내고 정리를 해서 아이들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줘야 하는데 내 책들이 아이들 방에 있으니 딱히 내 영역이라는 생각이 안 들 것 같다. 이번 달 목표는 딸아이들 방 베란다에 있는 학급문고 도서들 다 학교로 옮기고, 아이들이 (평생) 안 볼 것 같은 영어 소설들 정리해서 빼 내고, 피아노 악보들도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책꽂이 두 개를 빼내는 것이다. 그러면 ㅁ자로 둘러싸인 가구들에게서 최소한 양쪽 벽에만 가구들이 있을 테니 공간의 트임이 더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좀 덜 어지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일단 주방과 냉동실은 아직까지는 유지가 되고 있으니 정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는 공간의 면적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나도 아이들도 함께 힘을 내 볼 계획이다. 아주 크게 마음을 먹어야 깨끗해지는 방과 공간이 아니라 잠깐 5분이면 쓱쓱 원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