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처음으로 제야의 종소리 들으러 가던 밤

by 여울

일 년의 마지막 날, 밤 열두 시가 다가오면 항상 텔레비전에서는 보신각 타종행사 장면을 보여주었다. TV에서 하는 카운트 다운은 조금 느렸다. 사람들은 빼곡하게 몰려있는 그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 너무 늦고, 사람은 많고, 다음 날 교회에 가서 원단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12월 31일 아침에 오늘은 꼭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와 셋째는 "재미있겠다!"며 같이 가자고 했고, 첫째와 넷째, 그리고 신랑은 '굳이 거길 왜 가냐. 가 봐야 보이는 건 사람 뒤통수뿐이라더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뭐 그럼 두 명만 데리고 가면 되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둘째와 셋째는 배신을 했다. 귀찮다는 것이다. "그럼 나 혼자라도 갈래!" 오기가 생겼다. 아이 둘 데리고 버스도 잘 안 다닐 그 길을 가느니 혼자서 여운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조금 일찍 가면 좋겠지만 글로성장연구소 고전독서 줌 미팅이 밤 9시 반에 있었다. 10시에는 나가야 할 텐데... 다소 초조한 마음도 들었지만 10시가 좀 넘어서 미팅이 잘 끝났다.


이제 문제는 차로 갈까 버스로 갈까 하는 것이다. 서울역 근처에 차를 세울 수 있었는데 어차피 또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은 비슷한지라 고민을 하다가 그냥 버스로 갔다. '종로 1가까지 바로 이어진다니 너무 좋은 거 아니야!' 하는데 버스는 시청까지만 운행한다고 했다. 다 같이 우르르 내리니 당황한 외국인 아가씨 두 명이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저기 사람이 많아서 통행 제한을 해서 그렇대'라고 대답해 주었다.


레이저 빔이 쏟아지고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기에 길은 몰라도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중간 황금 자리는 이미 꽉 차서 들어갈 수 없었고 가장자리에서 대형 스크린이 보였다. 중앙 무대 가까이 갈 수는 있겠지만 시민통행로라서 서 있을 수는 없다. 타종을 하는 분들 소개가 있었다. 수능최고령 응시자 할머니부터 다국적 글로벌 인플루언서들까지. 카운트 다운을 함께 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종을 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소리의 울림이, 그 울림의 파동이 몸으로 느껴졌다. 아, 이래서 종소리를 들으러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점은 다를 것이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 서울에서 한 해의 시작을 울리는 종소리. 작은 감동이 느껴졌다.


축사도 공연도 이어졌으나 잠시 보다가 나는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조금 힘들었다. 버스가 많지 않기도 했거니와 버스 정거장이 상당히 멀었다. 올 때 내린 시청 앞을 지나 거의 서울역 가까이까지 와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행히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조금은 편하게 왔다. 집 바로 앞까지 오는 버스가 아닌지라 다시 10여분을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누우니 벌써 3시가 다 되었다. 으아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덕분에 어제는 좀 많이 피곤했고 다른 일정이 예상치 않게 이어지는 바람에 일찍 잤어도 여전히 남아 있는 졸음이 살짝 감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한 마음은 종소리의 여운일까. 마음 속에 남아 있었던 하고 싶었던 한 가지를 해서 개운한 느낌일까. 하루가 지난다고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가 쌓여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는 일 년. 정말로 값진 시간들로 채워지는 갑진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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