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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an 09. 2024

마음을 치유하는 다정한 위로

어제는 그렇게 소진된 마음으로 있었다. 이 마음으로 무슨 줌 미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나 염려가 되었다.


어제부터 '영어책 읽는 밤'이라는 이름으로 영어 원서 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글로성장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영어 원서 읽기 모임의 진행을 내가 맡게 되었다.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서 영어 문장 공부와 영어책 읽기는 진행했지만 자율적인 공부와 자율 인증에 가까운 모임이었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시작은 처음이라 준비도 이리저리 했고 긴장도 많이 되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의 일들이 겹치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막상 시작하니 진행은 잘 되었고 책 읽기를 하면서 좀 치유가 되었다. 만약 이 수업이 없었다면 그냥 그대로 가라앉은 채 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폭언은 그렇다 쳐도 - 사실 1학기 내내 들었기 때문에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여전히 닫힌 마음은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 선의를 선의로 보지 못하고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해서 악의적인 스토리가 탄생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려니 심경이 복잡했다.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오셨기에 좋은 의도와 과정이 이렇게 편집될 수 있는지, 친구를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 잔인함으로 바뀌는 것에 기함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반 아이들이 상처를 입고 놀랐을 것이 많이 염려되어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 겪은 일들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할 수는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비난과 저주의 말을 퍼붓는 것도 좀 견디기 힘들었다. 남에게 비수를 겨누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비수를 품고 있는 것이기에 그 칼날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 마음으로 정리를 했다. 너와 나의 인연을 여기까지구나. 바보 같이 혼자서 걱정하면서 끌어안고 있었구나. 정말로 이제는 마음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폭언과 협박 때문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백 퍼센트 진실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쁜 의도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시각으로 본 것을 말하기 때문이고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은 제외하고 약간의 진실을 섞으면 원래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한다. 약간의 진실이 반영되었기에 정말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다. 아이와 가족이 잘 되길 바란다. 이것은 진심이다. 부디 마음에 맺힌 것을 털어낼 수 있고 그 무게에서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바란다. 진실은 꼭 밝혀진다고 반복해서 나에게 이야기했는데 그 진실이 밝혀졌을 때도 결과가 무엇이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외사랑은 이제 접어야겠다.


복잡한 마음으로 자려고 누워있는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깜빡거렸다. 세부에 계신 스텔라 작가님의 따듯한 위로의 말과 어린 왕자 필사본 사진이었다. 영어책 읽는 밤에 참석하고 싶지만 일정상 이번 달은 어려우니 다음 달부터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는 미리 전해 주셨다. 하루종일 지쳐있던 마음에 스며든 다정한 위로에 참고 있던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어쩌면 나는 괜찮지 않았나 보다. 나의 아픔보다도 저분들의 마음이 먼저 걱정이 되고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나의 마음상태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나 보다. 뜻하지 않은 연락에 굳어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이 사르르 풀어졌고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린 왕자 역자의 노트를 보는데 감동적인 문장이 하나 들어왔다. We translators - that we must overtake one another. 우리 번역가들은 반드시 서로서로 앞서가야 한다. Time reveals all translation to be paraphrase, and it is in the longing for a standard version of a "beloved" work that we must begin again, 이라는 부분이 앞에 있다. 시간은 모든 번역이 바꾸어 표현되어야 함을 나타내고 있고 반드시 재시작되어야 할 "사랑받는" 작업의 표준판본에 대한 간절한 바람 속에서. 즉 시간은 흐르고 변화는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새로운 번역에 대한 요청이 항상 있으니 번역가들은 서로 노력하며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글의 제대로 된 감동을 시대의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서.


시간은 흘러가고 시대는 변화하고 그리고 사람은 성장한다. 시대가 변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나의 고통이 가장 크고 나의 사정이 가장 급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헤아리고 함께 가는 이 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 서로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시련도 도전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또 감사로 하루를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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