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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an 12. 2024

초등 2차 임용고시 감독의 하루

어제는 처음으로 임용고시 감독을 하고 왔다. 복도감독관은 춥고 힘들다더라는 이야기는 전에 얼핏 들은 적이 있었고 내가 관심이 있었던 부분은 영어평가관이었다. 예전에 한 번 기회가 있었는데 진짜 내가 영어로 질문을 던지고 같이 대화를 나누는 그런 면접인 줄 알고 조금 더 영어실력을 키워서 와야지 하는 마음에 가지 않았다. 가서 보니 영어 실력이 필요한 것은 맞았다. 그런데, 나는 입도 한 번 열지 않았으니 발화의 부담은 없었다는 것을 어제사 알게 되었다.


2차 임용고시 감독을 뽑는다는 공문을 보고 지원을 헸다. 예비교사들이 어떻게 영어수업을 시연하고 생각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가야 하는 학교는 우리 집에서 정반대에 떨어진 곳.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10분, 차로도 35분은 걸린다. 아침에는 35분이지만 저녁때 퇴근이 걱정인지라 결국 대중교통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6시에 일어나서 서둘러 준비를 한다. 머리를 어젯밤에 감아두길 잘했다. 서둘러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건만, 이런..... 버스가 바로 앞에서 출발했나 보다. 앱에서는 분명히 2분 남았다고 했는데 7분 남은 것으로 변경이 되어 있었다. 내려서 지하철을 타러 갔더니 또 내 앞에서 출발했다. 4 정거장은 더 와야 탈 수 있다고 뜬다. 그래도 한참 가야 하니 앉을 수는 있겠지. 나는 좀 눈을 감고 자면서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7시도 안 된 그 아침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시는지 처음 알았다. 7시 반도 8시 반도 아니고 6시 반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중간 즈음 앉기는 했으나 처음 가는 곳이라 긴장해서 잠이 오지는 않았고 결국 맨 정신으로 내렸다. 이제부터는 걸어서 10여분을 가야 한다. 택시를 타고 싶지만 8차선도 넘는 큰길을 건너야 하고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정말 교통이 너무 안 좋다.


7시 4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뛰어서 도착하니 42분. 정확하게 40분에 어디시냐고 전화가 왔다. "ㅇㅇ관 앞입니다." 한 교실에 3명의 평가관이 배정이 되어 있고 수업 실연을 마치고 난 다음이 영어수업실연이다. 기존의 15분에서 20분으로 구상 시간과 실연 시간이 늘어났기에 영어 수업 실연과 면접은 40분 늦게 시작하고 그만큼 늦게 끝난다. 빨리 끝나야 6시. 나는 오늘 결혼하는 제자와 저녁 약속이 있다. 이제 핸드폰을 제출한다. 제자에게 오늘 연락이 종일 안 되고 6시에 끝날 예정이고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으니 끝나고 연락하겠다는 문자는 미리 보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수험생이 편의와 감독관의 편의를 위해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대형 전자 타이머와 수동 미니 타이머 두 개를 준비해 두었다. 전기가 나갈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통통한 야채김밥이 하나 놓여있다. 그동안 여러 감독을 해 봤지만 아침에는 항상 김밥을 한 줄씩 준비해 주어서 아침 식사에 대한 부담이 없다. 김밥이 너무 통통해서 마지막 3개는 겨우겨우 먹었다. 남겨도 되는데 그냥 먹었다. 밀봉되어 있는 문제지와 지침서 등등을 들고 평가실로 이동한다. 이제 우리는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0분의 수업 실연과 면접이 끝나면 다시 10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있다. 그렇게 한 시간에 3명의 수험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점심시간은 70분이 주어지지만 우리는 아까처럼 40분 늦게 진행이 된다. 모두가 핸드폰을 맡겨 놓았기에 수험생도 평가관도 감독관도 모두 외부 세계와는 단절이다. 정말 운 좋게 앞 번호를 뽑으신 분들은 오전에 끝내고 나가시고 마지막 번호를 뽑으신 분들은 10시간 정도를 기다려서 6시 정도에 나가시게 되는 셈이다. 나는 어땠더라...? 아주 늦게는 아니라서 기분 좋게 나왔던 기억이 난다. 해가 밝은 때 나왔으니까.


드디어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지원자 예비 선생님들을 한 분씩 만나게 되었다. 이런 말 하면 정말 죄송하지만.... 세상에... 세상애..... 갓 들어오는 예비 선생님들은 한 분 한 분 정말이지..... 너무 앳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평가관 매뉴얼에는 미소 금지, 고개 끄덕임 금지 등 그 어떤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반응을 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었다. 미소는 그렇다 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는 것은 좀 힘들었다. 나는 경청하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마구 끄덕여 주고 싶단 말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어제 처음으로 알았다. 해 보니까 되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커피를 달고 살았다. 간식 파우치에 있는 모든 사탕도 하나씩 차례차례 쉬는 시간마다 녹여 먹으면서 당 충전을 했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서 준비했을 이들에게 나도 맑은 정신으로 또롱또롱하게 집중해서 들어야지! 그 짧은 구상 시간과 실연 시간 동안 준비한 것을 보여주려면 하루 이틀의 연습으로는 되지 않고 최소한 한 달은 해야 긴장한 상황에서도 나올 것이다. 예전에 북한 아이들은 자다가 깨워도 바로 춤과 노래를 할 수 있다고 했던가. 확실히 많이 준비하신 분과 아닌 분의 차이가 보이긴 했다. 일반 한국어로 진행하는 수업이라면 조금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외국어인 영어수업 실연은 짧아도 무게감이 크기 때문이다.


지원자들과 마주치면 안 되기 때문에 화장실도 따로 있고 부득이하게 가야 하는 경우는 지원자들이 없을 때에만 갈 수 있다. 점심 먹으러 갈 때에도 인솔자를 따라서 돌아가고 함께 이동해야 할 정도로 철저하다. 거기에 수험 번호가 아닌 추첨으로 관리 번호로 가기 때문에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도 없다. 정말 철저하기 그지없다.


10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평가관 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근무를 하신 경험이 풍부했고 그만큼 넓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계셨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이 유쾌하고 열려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어떤 경우는 평가관들끼리 싸우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그런 것 전혀 없이 계속 웃으면서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두 분은 평가관도 여러 번 해 보신 경력자들이시라 더 편하게 잘할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이번 학년도는 동료인복은 정말로 끝내주는 것 같다. 학부모는.... 음..... 96%는 좋았다. 4%가 반대의 의미로 아주 끝내줬을 뿐. 


그렇게 마지막 지원자까지 실연과 면접을 마치고 우리는 점검을 한다. 빠진 건 없는지, 실수는 없는지, 그리고 본부로 가서 또 몇 번의 검수과정을 거친다. 정말 철저하게 확인과 확인을 한다. 고사장을 나서는 시각은 6시 반. 밀린 알람과 메시지들을 확인하면서 일단 아이들 저녁을 시켜주고, 제자에게 연락을 한다.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아침에는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근육통이 왔다. 나 역시도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었던 끈이 탁 풀렸기에 그럴 것이다. 감독관을 이틀 연속 하시는 분들은 정말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식사는 잘 나온다. 원래 아침을 가볍게 먹는 편인데, 김밥으로 묵직하게 시작했고, 간식 파우치는 알차게 들어있었으며, 점심은 반찬이 무려 6가지였던가. 그리고 오후 중간 휴식 시간에는 샌드위치와 초코우유도 주었다. 움직이지는 않고 앉아서 계속 먹기만 하는 것이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식사와 간식이 사이사이 나오는 그런 기분이었다. 저녁 약속만 아니면 저녁은 안 먹었어도 되었을 것이다. 


1.5배를 1차에서 선발하고 2차에서 한 번 더 과정을 거쳐서 정식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교대 수시 정원 미달이 되었다는 소식에 올 것이 왔다는 느낌에 마음이 안 좋았다. 이러한 험난한 상황에서도 초등교사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 기꺼이 시험에 응하고 준비했을 예비 선생님들께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급여는 적고 요구되는 것은 많은 이 자리에 오시려고 이렇게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은 정말 사명감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정말 아쉽게 1 배수 안에 들어가시지 못하는 선생님들께는 부디 내년에 다시 지원해 주시길. 그래서 꼭 좋은 결과를 거두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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