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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an 13. 2024

제자에게서 청첩장을 받던 날

십여 년 전, 유독 힘들었던 한 해가 있었다. 6학년 중간 담임으로 들어갔고, 아이들은 나를 미워했다. 학교 측이 원망스러웠다. 새 학교로 옮기던 해, 나는 영어심화연수에 선발되었고 한 학기 동안 파견을 가게 되었다. 옮길 학교는 4학년과 영어교과, 6학년 담임 자리를 새로 오는 선생님들을 위해서 비워두었다고 했다. 나는 당연하게도 영어교과 자리를 받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학교는 나에게 6학년 담임을 주었다. 결혼 예정이라는 말씀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6학년 담임인데 중간 발령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만 해도 저경력에 이미 결정이 난 사항을 바꿀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 대신 학교는 기간제 선생님을 채용했다. 갓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신규 선생님이셨다. 신규에게 첫 제자란 정말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 선생님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정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 알고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마지막날 했다. 아이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아이들은 충격에 사로잡혔고 그 상실감과 분노는 당연히 내게로 향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침입해 들어온 이방인이었다. 그 선생님은 경기도 교육청 소속이라 서울에서는 다시 만날 수도 없었다. 집도 원래 경기도라고 했다.


그 반은 원래도 힘든 아이들이 많기로 유명한 반이라고 했다. 인수인계를 위해 간 날까지도 선생님은 학부모님들과 전화상담을 하고 계셨다. 미국에서 갓 돌아와 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었고 결혼식 날짜는 더더군다나 9월 중순. 시가에서는 함께 살기를 원했다. 버스로 10분 거리인 친정이 아니라 4번을 갈아타고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검단에서 나는 그 해를 살아야 했다. 그때만 해도 운전을 못하던 때라 대중교통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차로도 기본 1시간은 넘었다. 왕복 5시간을 출퇴근에 쏟으며 시가에서 시동생과 함께 다섯 식구가 사는 것도 너무나 힘든데 아이들의 적대감을 날마다 마주하면서 6학년 업무를 하는 것은 정말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하루하루 날짜를 세고 지우면서 그 2007년을 보냈다. 내 사진에 칼질을 하고 낙서를 하는 아이. 하도 난동을 피워서 다목적실로 데려가자 의자를 다 쓰러뜨리고 던지면서 난리를 피우던 아이. 체육시간에 일부러 공을 멀리 운동장 끝으로 던져 버리고 나 몰라라 하던 아이. 다른 여학생을 왕따 시키면서 나를 끝없이 쏘아보고 자신을 정당화하던 아이....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한 학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었다. 이전 선생님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혹은 그 시선에서 비껴있어서 외로웠던, 비주류에 속했던 아이들은 나에게서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이미 형성된 여왕벌과 같은 여학생들의 무리와 거칠었던 남학생들의 무리에서 제외된 아이들. 혹은 그 그룹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아이들. ㅁㄱ이는 그때도 한결같았고 ㄴㅈ이도 한결같았다.


아이들은 졸업 후에도 몇 번이고 나를 찾아왔고 특히 ㅁㄱ이는 내가 어디로 이사를 가든 멀리 안양까지, 서울 어느 곳이든 나를 만나러 왔다. 입시 철에는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고 하기도 하고 사춘기를 지내며, 입시를 거치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내 앞에서 울기도 하며 마음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냥 한 두 번 오는가 생각했는데 아이는 내게 진심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기쁨과 슬픔과 힘듦을 나누며 스며들어 갔다. 그 가운데 ㅁㄱ이가 주는 애정과 감사에 오히려 우리는 졸업 후에 더 친해지게 되었다. ㅁㄱ이는 아이들을 예뻐해서 우리 집에 놀러 오든 나를 밖에서 만나든 항상 아이들에게 주라며 간식거리를 들고 왔다. 학생이 용돈이 어디 있냐고 괜찮다고 해도 설날이라 세뱃돈을 많이 받았다, 아르바이트해서 두둑하다면서 그렇게 챙겨 왔다.


그리고 이제 결혼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3월에 결혼하기로 한다고 작년에 만났을 때 미리 이야기는 했다. 저녁을 같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약속도 두 달 전에 미리 잡았다. 다만 그날이 임용고시 2차 평가일인 줄은 둘 다 몰라서 ㅁㄱ이가 많이 기다리긴 했다. 약속을 취소해도 되는데, 그냥 선생님 보고 싶다고 기다려도 좋다고 해서 예상 시간보다 30분 정도 더 늦게 만났다. ㅁㄱ이는 나에게 밥을 사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카드를 빼는 아이를 두고 정말 빠르게 직원분에게 무조건 내 카드로 결제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아이 나이수+1년을 알아왔으니 어른이 되어서 만났던 웬만한 친구들, 동료들보다 같이 시간을 더 보낸 셈이다. 사실 우리는 나이도 15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속되는데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정성과 노력, 그리고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 ㅁㄱ이가 이렇게 계속해서 나에게 연락하고 찾아오지 않았다면 다른 많은 제자들처럼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는 예쁜 아이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게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벗이 되어가고 있음을 해마다 느낀다.


늘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랑스러운 마음의 소유자. 그래서 모든 담임 선생님들께 최선을 다하는 것일까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라고 한다. ㅁㄱ이가 만난 12명의 담임 선생님들 중 지금까지 연락을 하는 선생님은 나와 고1 담임 선생님뿐이라고. 그러니 나는 매우 운이 좋았던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그 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제자 중 하나를 얻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미 겪고 있는 서로 다른 가풍의 두 가정 사이에서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ㅁㄱ이라면 잘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ㅁㄱ이의 결혼식. 아이들 네 명 다 데리고 오라고 신신당부하던데 그럴 순 없지. 혼자 가던지 둘째만 데리고 가던지 해야겠다. 고통은 사람에게서 오지만 역시 행복도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맞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지속되는 오래된 인연들, 그리고 새로이 시작되는 인연들이 있으니 얼마나 복을 받았는지 또 한 번 감사하게 되는 오후이다. 겨울 햇살도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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