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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Feb 08. 2024

또다시 6학년 담임 그리고 도전

오늘은 공식 출근일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6학년 담임을 신청했다. 올해 6학년은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이유는 작년 5학년이 경합이었고, 그래도 크게 힘들지 않은 괜찮은 학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알고 보니 아니었다. 경합은 무슨.) 나는 진심으로 6학년을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작년에 힘들게 만들어 놓은 자료들이 우선 너무 아까웠다. 교과서가 바뀌는 바람에 열심히 자료를 만들었고 학급경영의 틀을 다졌는데 다른 학년에 가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니 아까웠다. 물론 재작년에 영어교과를 맡았을 때는 영어교과를 2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학교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작년에 너무 힘든 한 해를 보냈기에 6학년을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리고 정말로 떨리는 발표의 시간. 나는 6학년이 되었다. 작년에 동학년을 했던 단짝 샘은 다른 학년으로 가셔서 너무 아쉬웠고 2분은 휴직을 하셨다. 그리고 대부분 그대로 남아서 동학년은 반은 낯익은 얼굴들이다. 우리 학년 호흡이 잘 맞아서 좋았는데 새로 오신 선생님들도 그러시리라 생각이 된다.


그리고 운명의 반 결정하기. 부장님이 하나하나 숫자를 아주 작게 쓰셨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사실 나는 정말로 교실을 옮기고 싶지 않았다. 짐이 많은 것 하나. 복도 끝이라 좀 더 넓은 교실이라는 이유 하나. 그리고 피아노. 그렇다. 우리 반에는 피아노가 있다. 저 피아노를 옮길 생각을 하니까 좀 아찔한 마음에 가능하면 원래 쓰던 교실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맥시멀리스트답게 짐이 많다. 책장도 최소 4개는 옮겨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거슬러 거슬러 나는 복도 반대쪽 제일 끝반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동명부를 받았다. 그런데 부장님이 물으신다. "ㄱㅇㅇ 학생 담임 선생님 몇 반이실까요?" 순간 기억났다. 내가 받은 명부에 별표가 되어 있는 그 이름의 학생이. "전데요." "생활부장님이 ㄱㅇㅇ 학생 담임 선생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어요."


아. 내 운명. 작년에 그토록 힘들게 지나갔는데. 사실 올해 초에도. 2월 초에도. 그리고 어제도 시달렸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손과 발이 떨릴 정도로 트라우마가 남았는데. 올해도 평탄하기는 글렀단 말일까. 생활부장님이 유일하게 콕 하나 집어서 말한 학생이 우리 반이라니, 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웬만하면 이리저리 다 겪어 봐서 어지간하면 넘기고 마는데 생활부장님이라니!!! 생활부장님이 학년 시작 전에 꼭 이야기를 해야 되는 학생이라니!!!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극심한 ADHD? 아니면 폭력성향이 난무한 아이? 부모님이 자기주장이 강하신가?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부적응이라는 별이 붙어서 올라온단 말인가. 마음이 초조해져서 학년 업무를 나누고 이런저런 것을 논의하는데 도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교과실로 가서 생활부장님을 만나는데 '아이고 저런. 왜 선생님이 또.' 하는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부장님 올해에는 자주 안 뵙고 싶었는데 올해 이렇게 되었네요." 차근차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시고 현재 학폭 진행 중이라는 것도 말씀해 주셨다. 대강 파악이 되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지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하니 여전히 마음은 가볍지 않다. 몇 년 전 교실에 드러누워서 소리를 지르던 ㅎㅇ이가 먼저 생각이 났고 다음으로는 16년 전 의자를 다 쓰러뜨리며 감정을 이기지 못하던 ㄱㅇ이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잡아 본다. 그래도 어쩌면 또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신규 교사 시절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가끔씩 폭발하던 ㅅㅇ가 나와는 그래도 괜찮은 한 해를 보냈던 생각이 났다. 모든 아픔과 감정은 내 마음이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단절감에서 온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가 서로 잘 이해하고 들을 수 있기를. 그래서 한 해를 또 무사히 잘 넘길 수 있기를. 



집에 오는 길. 마음은 복잡한데 또 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아이들과 해 보면 좋을 과제들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수채화부 말고 국제사회 관련 프로젝트로 동아리를 해 봐야겠다! 국제공동수업을 하고 싶지만 선정이 되지 않더라도 나름으로 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이 아이가 우리 반으로 온 것은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도전은 도전이고 미리 눌릴 필요는 없으니까. 또 자라 가는 한 해를 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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