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유소년 야구장이 두 곳이 있다. 물론 더 있지만 주요 경기는 주로 이 두 곳에서 많이 치러진다. 장충과 구의구장이다. 장충은 국립극장 옆이라서 접근성이 조금 더 좋고 구의는 좀 멀지만 한적하다.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4학년 2학기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5학년에 막 올라선 우리 아들은 사실 정식무대에 서기엔 실력도, 경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아이가 속한 야구팀에는 6학년 학생은 1명뿐이었다. 코로나 시즌을 거치면서 새로운 학생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그만큼 6학년 형은 혼자 짐을 져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많은 형들의 동생으로 귀여움만 받았는데 갑자기 내 밑으로 동생들이 열 명도 넘게 생겨 버렸고 나누어질 사람 없이 혼자 져야 하니 얼마나 부담감이 컸을지는 상상이 간다.
초등학교팀의 첫 공식 경기는 졸업생들과 졸업생들의 부모님들까지 모두 오셔서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큰 이벤트이다. 날도 따뜻하게 좋았던 날. 일요일 오전이었다. 투수로 마운드에 서야 할 아이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나는 오후 예배를 빠지고 왔다. 예배를 빠질 수 없다는 신랑과는 좀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맞다고 여겨졌다.
상대는 막강한 전력의 유명한 학교. 6학년이 다수인 이 학교를 상대로는 아이들의 체력도, 그리고 경력도, 쌓아온 유명세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콜드게임만 안 당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발로는 당연히 6학년 주장 형이 나섰다. 6학년 혼자이기도 하지만 주장 형은 원래 야구를 잘하는 데다가 노력도 많이 하는 성실한 학생이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로 집중을 해서 잘 던졌고 3실점으로 3개의 이닝을 잘 마무리했다. 우리는 너무 좋았다. 사실 실력차로 보자면 더 점수를 내주어도 할 말이 없겠지만 이 정도면 잘했다.
초등학교 경기는 6이닝으로 되어 있다. 아이들의 체력상 9개의 이닝을 모두 소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6이닝 전반까지만 하고 끝나기도 하고 콜드게임의 경우는 4이닝 만에 종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투수 한 명이 던질 수 있는 것은 최대 3개의 이닝까지. 그래서 아무리 에이스 투수가 있어도 남은 3개의 이닝은 다른 투수들이 맡아야 한다. 그래서 보통 2개, 1개로 나누는 편이다.
4이닝부터는 우리 아들이 마운드에 섰다. 아. 정말이지. 나는 양손을 꼭 잡아 쥘 수밖에 없었다. 야구를 잘하는 선배 형도 3 실점을 했는데 우리 아들이 더 잘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테니까. 아이는 잘해 주었다. 스트라이크 아웃도 몇 번 나왔고 2이닝 동안 2 실점으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올해 첫 공식경기 등판으로, 야구를 한 지 1년은커녕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풋내기 투수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이다.
비록 5대 0으로 졌으나 우리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득점을 못했지만 공격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점수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6학년 1명, 그리고 다른 5학년 친구들 대부분이 다 4학년 2학기에 야구를 시작했으니 정말 루키들뿐이었다. 4월에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후보 선수도 마땅치 않을 정도로 누구 하나라도 아프면 안 되는 상황으로 아슬아슬하게 팀을 짤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언더독 중에 언더독이라고 해야 할까. 졌어도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그리고 역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이 뛰는 일이었다. 아직도 그 야구장에 내리쬐던 따스한 햇살과 싸늘하지만 설레었던 봄바람의 기운이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