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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r 04. 2024

감사함으로 여는 6학년 첫날 아침

올해도 6학년 담임이다. 작년에 5학년이었던 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고 했다. 점수를 많이 쌓아두신 이 학교에 오래 계신 선생님들이 마지막으로 지원하셔야 가능했을 정도라고 들었다. 그래서 올해도 6학년이 매우 치열할 것이라고 다들 예상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문장 끝에는 반전이 있는 법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0개 반을 맡으신 담임 선생님들의 절반은 새로 부임하신 분들이셨다. 비인기학년인 6학년. 나는 이 6학년이 하고 싶었다.


제일 큰 이유는 같은 교육과정을 두 번 가르치기 때문에 좀 더 덜 수고롭고 좀 더 깊이 있는 수업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늘 같은 학년을 최소한 두 번을 반복하고 싶다. 그렇게 나는 6학년을 또 맡게 되었다. 원하던 바였지만 어제는 정말로 잠이 오지 않았다.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들을 만나려고 나름 일찍 누웠는데 1시, 2시, 3시.... 결국 asmr의 힘을 빌려서야 겨우 잠들었다. 그리고 7시도 전에 눈이 알아서 떠졌고. 


마음이 심란했던 이유는 한 아이 이름 옆에 적힌 부적응이라는 단어의 영향이 가장 컸을 듯싶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선생님도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나는 무서운 선생님은 되기 싫은데 3월 한 달은 웃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이 아니라 아예 기정사실처럼 전해진다. 우리 둘째에게 물어보면서 나름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더니 질색팔색을 한다. 역시 나는 무표정은 좀 힘들겠다. 그래도 20년 넘게 현장에 있어온 경력 교사의 노하우는 있다. 신규 때처럼 허니문 기간인 한 달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힘든 그런 시간은 훨씬 덜하다. 


평소에는 8시 20분 정도에 나서지만 오늘은 일찍 나선다. 교실문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열 수 없지.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긴장이 눈에 보인다. 나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래도 느껴진다. 오늘 하려고 최소 5가지의 활동을 준비해 두었다. 물론 다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많아야 2개 정도를 예상하지만 성격상 1.5배 이상을 준비해 두어야 안심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많은 활동을 오늘은 딱 하나 밖에 하지 못했다. 타임캡슐은 무조건 첫날 해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활동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만든다. 


작년에 나에게 쓴 편지를 보았다.

쓸 때는 몰랐는데 오늘 읽어보니 내가 쓴 편지는 긍정 확언이었다. 한 해를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행복하게 보내면서 성장했다는 과거형의 긍정 확언. 한 해를 잘 보냈으니 다가오는 2024년도 역시 잘 보낼 것을 믿는다는 응원의 말이 적혀있었다. 작년에 세운 계획은 대부분 지켜졌다. 잘 기억나지도 않았던 작년 3월 첫날 쓴 편지를 보며 놀라운 마음이 들었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결국은 잘 지나올 수 있었다. 올해도 여러 일들이 있겠지만 내년 2월에 아이들을 졸업시키면서 또다시 눈물을 흘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 해를 잘 채워서 함께 교학상장을 이룬 아이들과 아름다운 이별에서 오는 그 행복한 눈물 말이다. 


그래서 감사함이다. 감사함은 늘 아이들과 함께 인사하는 세 문장의 첫 글자를 따 온 말이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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