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r 07. 2024

학년 초 학급 세우기 - 서로를 알아갑니다

학년 초에 필수 활동에는 자기소개하기가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그림을 많이 이용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예전에는 육각딱지를 이용해서 가운데에 내 모습을 그리고 꽃잎 6장에는 자신에 관한 것들을 그리고 적는 것을 주로 했다. 가운데에 나무 기둥을 만들고 꽃잎 같은 육각딱지들을 이십 장 넘게 붙이면 교실 뒤 게시판으로 딱 좋았다. 그렇게 십 년쯤 하니까 좀 다른 것을 해 보고 싶었다.


작년부터는 미술로 유명한 꿈틀이샘이 만들어 주신 나 연구소 자료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냥 바로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림책을 한 권 활용하기로 한다. 엉뚱한 상상력과 전개로 웃음을 빵 터지는 즐거움을 주는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동화책 '이게 정말 나일까?'를 같이 읽는다. 나를 대신할 로봇에게 나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나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저학년 동화지만 고학년이 보아도, 어른이 보아도 마음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다. 이렇게 나에 대해서 들여다본 다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 좀 달라진다. 꼭 잘한 점만 적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고 나의 단점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색칠하고 쓰고 꾸미는 과정은 시간이 늘 걸린다. 아침 1, 2교시를 활용했지만 늘 시간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다. 평소 같으면 조금 더 여유를 주었겠지만 오늘은 5교시 후 하교이고 그전에 추가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조금 속도를 붙이도록 했다. 


5교시가 되어 먼저 '친구야 반가워!' 활동을 한다. 첫째 날, 혹은 둘째날 해야 더 좋지만 셋째 날인 지금 해도 상관없이 재미있는 활동이다. 9명의 친구 중 남녀 비율을 적당히 맞추어서 서로 인사하고 묻고 재미있는 미션을 진행한다. 그다음에 상대방의 서명을 받고 또 다른 친구를 만난다. 나도 아이들 속에 들어가서 같이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주로 지켜보면서 짝을 못 만나는 친구들을 서로서로 연결해 주었다. 어색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먼저 말을 못 걸고 빙글빙글 배회하는 아이들이 좀 있었다. 먼저 미션을 끝냈어도 한 번 더 해 주라고 슬쩍슬쩍 말을 건네면 또 그렇게 한다. 


어느 정도 된 것 같아 자리에 앉아서 확인한다. 몇 명이 다 채우지 못했다고 한다. 주위 친구들과 서둘러 서명을 교환한다. 빙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로폼 공에 이름을 각자 써서 로또처럼 만들었다. 선생님이 무작위로 공을 꺼내서 이름을 부른다. 오늘의 빙고는 네모 빙고이다. 가운데를 제외한 사방의 이름이 다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스무 명의 이름이 나오도록 단 한 명도 빙고가 되었다는 아이가 없었다. 그러다 21번째 공에서 드디어 빙고! 가 나왔다. 작년에 있었던 안 좋은 일로 인해 혹시라도 올해 이번에 아이들과 사이가 어그러질까 봐 내내 긴장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있던 그 아이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밀크츄를 주었다. 그리고 한 명 더! 그다음 공이 나온 아이에게는 아차상으로 비타민을 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한 번만 더 하자고 해서 공 하나를 더 뽑았더니 여덟 명 정도가 우르르 손을 들었다. "이건 기분이가 좋은 거야!" 원래 상품은 희소성이 있어야 귀한 법이다. 여기까지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제 아까 만든 자기소개서를 활용한 다음 활동을 전개한다. 자기소개서 항목에는 특수능력을 적는 란이 있었다. 먼저 내가 시작한다. "나의 특수능력은 매운 것을 먹으면 휘청이는 것입니다." 아, 이거 말고 더 좋은 것으로 할걸. "책을 빠르게 읽는 능력입니다."가 더 좋았겠지만 기어코 모둠명을 육삼불닭으로 지은 그 모둠 이름을 보니까 매운 걸 못 먹는 내 모습만 생각이 났다. 


공을 하나 뽑는다. 나와서 이야기한다. "선생님의 특수능력은 매운 것을 먹으면 휘청이는 것입니다. 제 특수능력은 잘 웃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을 하나 뽑는다. 뽑힌 아이는 나와서 앞 선 두 명의 이름과 그 친구들이 가진 특수능력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공을 뽑고. 이렇게 해서 26명의 아이들이 모두 친구의 이름과 특수능력을 이야기했다. "제 특수능력은 집에서 소멸하는 것입니다." "응? 뭐라고? 소멸한다고?" "아니요. 소묘요." 아하. 우리는 모두 까르르 웃고 말았다. 소묘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연필로 그림을 자세히 그리는 것이라고 옆에서 알려준다. 그러다 한 명이 "제 특수능력은 동생을 때리는 것입니다." 왓? 상담자료에서 동생이 세 명이 있는 것을 보아서 첫째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둘째이고 아직 미취학인 동생이 하나 더 있는 육 남매였다. '어머나.... 어머니.... 꼭 안아 드리고 싶습니다!!' ㅇㅇ이 말로는 동생들이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가끔 때리게 된다고 했다. 물론 누나에게는 꼼짝 못 한단다. 앗, 그런데 여기서 나의 실수였다. 한 명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니 그다음에는 누나와 싸운다, 동생과 싸운다 라는 특수능력들이 연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좋은 특수능력을 알려달라고 했다. 잘 웃는다, 잘 먹는다, 방향 전환을 잘한다, 원숭이 얼굴 흉내를 잘 낸다 등의 재미있는 특수능력들도 나왔다. 


함께 까르르 웃고 밥을 먹으러 갔다. 내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소개도 함께 듣는 경청의 시간이기도 했다. 친구의 특수능력을 내 말로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간혹 실수도 하지만 그 과정도 재미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년 초 학급 세우기 활동 - 약속을 정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