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r 15. 2024

체육이 두려운 교사 H의 담임 체육 도전기

초등학생이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이요!


그렇지만 저는 체육이 제일 싫어요. 정말로 싫어요. 안 하고 싶어요........


그래서 작년에는 참 좋았다. 스포츠 강사님이 5, 6학년에 배정이 되었고 운동장 체육 주 1회를 맡아서 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체육관에서 하는 1시간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격주로 다목적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했다. 하지만 아래층에는 일반 교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위층의 소음은 고스란히 아래층 교실로 전달되는 구조였다. 그렇기에 거기서는 뛰거나 격렬하게 움직이는 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작년에 그 혈기 넘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목적실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주 2회 체육 활동에 가끔씩 번외 교실체육을 넣어서 진행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지냈다.


그런데... 올해도 스포츠 강사님이 우리 학교에 배정은 되었으나 3, 4학년으로 가신다고 한다. 아아니.... 진짜 꼭 6학년에 주시리라 믿었던 내게는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담임 체육으로 생으로 두 시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체육이 싫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일단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귀찮고 신발을 갈아 신는 것도 귀찮고 운동장으로 가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귀찮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다. 둘째. 체육을 조금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줄도 그어야 하고 도구들 세팅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도와주는 아이들이 있어도 이리저리 세팅을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들은 아무래도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셋째. 내가 체육을 잘 모른다. 교대에서 그렇게 열심히 배웠음에도 막상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니 체육 실력이 형편없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으니 나 역시 제대로 된 체육 수업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줄넘기, 평균대와 달리기, 피구, 발야구, 앞 구르기 정도 외에 다른 것을 초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 배웠다고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과목들은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데 체육은 진짜 피구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피구 공포증이 있다. 어릴 때 농구공에 얼굴을 직통으로 맞아서 너무 아팠고 그다음부터는 공이 그저 무섭기만 했다. 발야구는 할 수 있지만 피구는 여전히 무섭다. 땀이 나는 것도 싫고 하여간 체육이 싫은데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체육을 해야 한다.


첫 주야 학급 세우기를 하면서 어찌어찌 체육을 안 하고 버텼지만 둘째 주는 그래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나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 바쁜 와중에 체육 공부라니... 유명한 초등체육 선생님의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를 보면서 기초를 잡아갔다. 체육은 교과서를 아이들과 살펴보고 교과서 대로 가르치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작년에만 해도 대충 보았던 교과서를 꼼꼼히 보자 정말로 재미있어 보이는 활동들이 많이 보였다. 차근차근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육관에서의 첫 수업도 잘 해냈다. 체육을 제대로 하기로 마음을 먹자 작년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다목적실이 떠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뛰는 활동이 안 되면 안 뛰는 활동을 하면 된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칭과 근력 강화 및 바른 자세를 잡아 줄 수 있는 필라테스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초등학생이 다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쉬운 동작들을 먼저 생각해 보고 또 공부했다. 학교에 있는 요가 매트리스 수량을 파악한다. 23개. 4개가 더 필요하다. 서른 개 구입했다는데 7개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아이들 4명이 자원해서 들고 왔다. 


드디어 오늘, 영상으로 간단하게 필라테스 동작들을 보여주고 다목적실로 향했다. 매트리스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지 비닐 뜯는 작업까지 우리가 다 했다. 매트를 펼치자 아이들은 뒹굴면서 좋아했다. 그리고 시작한다. 천천히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컬업. 씨져. 싱글레그 스트레치. 스완 팔꿈치 대고 들기. 슈퍼맨. 스위밍. 그리고 무릎 꿇고 플랭크. 다시 스트레칭. 순으로 진행했다. 여자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했고 - 알고 보니 이미 필라테스를 좀 한 아이들도 있었다 - 남자아이들은 끙끙거리면서도 열심히 따라 했다. 다들 아주 개운한 표정이었다. 나도 몸이 시원해졌다. 두뇌를 쓰는 공부도 좋지만 역시. 몸을 쓰는 활동은 마음을 풀어준다. 알고는 있는데 몸을 움직이기까지 많은 용기와 각오가 필요했을 뿐. 2주 후가 기대되는 날. 햇살마저 참 좋은 봄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학년 담임교사가 받는 또 다른 선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