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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r 11. 2024

6학년 담임교사가 받는 또 다른 선물

평생가는 소중한 인연

지난 토요일에 제자 결혼식에 다녀왔다. 졸업하고도 매년 늘 한결같이 인사를 던 예쁜 아이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이겨내고자 노력했고 밝은 에너지와 웃음은 항상 반짝거렸다. 하루하루 날을 지워가면 힘들게 버티던 그 학년도를 그래도 ㅁㄱ이가 있어서 지낼 수 있었다.


6학년은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서 기피학년이기도 하지만 나는 6학년이 좋다. 물론 그만큼의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고 그래서 하루하루 초긴장으로 학기 초를 보내고 집에 와서는 쓰러져있는 요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6학년이 좋은 것은 나와 평생 가는 인연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제자와 선생님의 사이지만 십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나이가 조금 차이 나는 평생의 벗들이 된다.


아이들은 가끔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주세요!"라고 요청을 하곤 한다. 하지만 학기 중에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다. 학년 말, 졸업할 때, 그때도 정말 선생님 연락처가 알고 싶은 아이들은 따로 찾아와서 물어보라고 말은 해 준다. 그렇게 해서 정말 받아가고 가끔 찾아오기도 하지만 해가 거듭되면 아무래도 그 텀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인 내가 먼저 연락하기는 좀 어색하다.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그래서 결국은 먼저 나에 대해서 정말 끝까지 이어가고 싶은 아이들만 계속 연락을 하고 찾아오기 때문에 이십여 명을 졸업시켰어도 남아 이어지는 인연은 정말 손에 꼽게 된다.


우리 아이들 이름까지 기억하면서 늘 챙겨주던 예쁜 아이가 이제 결혼한다고 작년에 찾아왔고 나는 미리 모든 일정을 빼 두었다. ㅁㄱ이는 아이들 네 명 모두 다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럴 순 없지! 둘째만 데리고 갔다. 홍대입구인 줄 알았는데 합정역에서 더 가까웠다.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슬아슬 6분 전에 도착했지만 이제는 신부 입장을 준비하는 시간이라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아... 흑흑흑......


결혼식은 유쾌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한다고 했다. 신부 아버지의 성혼 선포와 신랑 아버지의 덕담이 이어졌고 신부의 절친의 축사와 신랑 절친의 축가가 이어졌다. 20대 해외 봉사에서 만나서 소울메이트가 되었다던 친구는 멀리 호주에서 축하해 주기 위해 왔다고 했다. '이렇게 기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든 너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오겠다'는 축하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친구를 가진 제자가 또 새롭게 보였다. 한가득 모이고 축하 영상을 찍는 신부의 친구들은 많았다. 나는 ㅁㄱ이가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얼마나 진심인지 안다. 친구가 많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하지 않고 모두에게 진심으로 대한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행진을 하는데. 둘이서 멈추더니 갑자기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가끔 신랑이 노래를 하거나 이벤트를 하는 것은 봤지만 둘이서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끼와 흥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본다.


친구들과 사진 촬영까지 다 끝나고 나서 우리는 잠깐 사진을 찍었는데 좀 미안했다. 결혼식 일정이 얼마나 촉박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잠깐 핸드폰으로만 찍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그만 정식 사진사의 멋진 사진이 나와 버렸다. 미안한 마음으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ㅁㄱ이와 신랑이 인사를 하러 왔다. 아까 그렇게 사진을 찍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자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라도 찍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한다. 그리고 오늘 신행 가기 전에 예쁜 사진 하나 또 건졌다고 잘 들어갔냐고 연락이 왔다.


우리 귀한 선물 같은 ㅁㄱ이를 데려가는 신랑은 얼마나 복을 받았을까 생각하다가 또 그만큼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ㅁㄱ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꼭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쓰는 만큼 삶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16년 전 나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폭력과 욕설을 일삼던 그 아이들의 소식을 간간히 듣는데, 그들의 삶은 힘들어 보인다고. 좀 씁쓸했다. 그래도 한 때의 사춘기의 열병을 앓았을 뿐 잘 지나가길 바랐는데, 그것은 아니었나 보다. 사춘기의 방황과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남을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것으로 틀어져 버린다면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만족으로 사춘기의 힘든 시간을 넘기려고 한다면 바르게 넘어가는 과정은 아니다. ㅁㄱ이는 당시에도 왜 저렇게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지혜롭게 잘 이겨내고, 이제는 시대를 넓게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멋진 어른이 되었다. 큰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해당 분야에 대해 또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늘 마음으로 진실되게 대하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귀한 제자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의 삶의 순간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을 알아서. 감사함으로 차는 주말과 오늘이었다.


예쁜 6학년 아이들을 또 맡은 나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또 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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