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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박스의 유혹

노 모어 럭키박스

by 여울

'럭키박스'란 단어를 접한 것은 처음 스타벅스 기사에서였다. 아침 일찍 오픈하기 전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곧 이어 중고시장에 프리미엄이 붙어 되팔린다는 이야기. 나는 스타벅스 매니아가 아니므로 패스.


다음은 한 화장품 가게였다. 가격은 같은데 운이 좋으면 그 이상의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점원은 상자를 들어보고 무게를 가늠해 보는 팁도 있다고 했다. 나는 슬리핑팩을 원했으므로 딱 원하는 제품을 받았고 뭔가 궁금해보고 열어보는 즐거움을 맛 보았다. 그러나 나머지는 사실 그닥 필요 없었다. 언젠가는 쓰겠지. (아직도 있다.)


그리고 한 블로그 셀러의 럭키박스.

어찌어찌하다 친해진 그 블로그 셀러는 제품을 구입하면 다른 소소한 제품들을 아낌없이 퍼 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가격대가 높아질 수록 함께 오는 소소한 덤은 사실 감동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럭키박스 공지가 뜬 날. 고민을 많이많이 했지만 가격대가 있어 선듯 사지는 않았다. 5만원, 10만원은 작다면 작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선듯 지불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줄줄이 올라오는 후기는 마음을 동하게 했고 결국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10만원 짜리 럭키박스를 주문했다. 오로지 현금만 받는데 며칠 후 거대한 상자를 열어보면서 난생 처음 언박싱 영상까지 찍어 봤을 정도로 큰 즐거움이었다. 대부분이 의류였는데 퀄리티는 정말 좋았다. 그 분은 정말 질이 좋은 의류를 취급했다. 문제는 사이즈와 스타일. 옷감도 좋고 디자인도 괜찮았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스타일. 너무 크거나 어울리지 않았다. 일부는 중고마켓에 올려서 헐값에 나갔고 팔리지 않은 옷들은 그대로 옷장에 쌓여있다.


그 뒤 시도를 두어 번 더. 진짜 좋은 제품들인데.분명히 아는데 그 럭키박스에 있던 물건들 중 지금 사용하는 것은 집에서 홈웨어로 입는 티 두 장 뿐이다. 내 십만원...그 뒤 혹해서 구입한 신발 럭키박스도 실패.


그리고 얼마 전. 뷰티 럭키박스! 한정수량 판매! 라는 글이 올라왔다. 사고 싶다! 일단 클릭. 결제창까지 들여다봤다. 순간 아직도 사용 중인 샘플들이 생각났다. 심지어 올 2월에 구입한 크림은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좋다는 고가의 뷰티제품들도 반 이상 남아있다.


순간 아차 싶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일까. 굳이 여기에 나의 관심과 시간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럭키박스에는 분명 원하는 맛의 초콜릿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초콜릿도 그만큼 있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럭키'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의미가 그렇다. 잘 고르면 럭키. 그렇지 않으면 쏘쏘 혹은 언럭키.


아직도 럭키박스라는 단어를 들으면 궁금하고 사서 열어보고 싶다. 그러나 이제 궁금해는 할지언정 클릭도 구입도 하지 않기로 했다. 먹고 싶지 않은 초콜릿을 굳이 사서 억지로 먹을 필요도 먹고 나서 유쾌하지 못한 상태로 있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럭키박스를 통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알맞은 가격을 지불하고 사면 된다. 깔끔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초콜릿 한 박스는 혼자 먹기 과하다. 많이 먹으면 속도 불편하고 살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이것저것 들어있는 럭키박스도 그러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다. 예상 외로 주어진, 쓰지 않을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먹거나 옷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 내가 진짜 입을 옷이 안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젠 럭키박스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로 한다.

굿바이.

노 모어 럭키박스.




*이렇게 길게길게 럭키박스에 대해 나열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아직도 미련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나. 이제 정말로 아웃. 엑스. 이 참에 팝업 알람도 해제해야겠다. 보면 사고 싶더라....

다행히도 그 뷰티 럭키박스는 하루 만에 솔드아웃이라고 새로운 공지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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