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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2. 2024

아이고 학부모 노릇 못하겠다

"아이고 학부모 노릇 못하겠다야."

"엄마 힘들지?"


오늘 운동회 때 한 할머니가 딸로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정말 그 말씀에 백 퍼센트 공감하면서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를 연거푸 생각했다.


오늘은 막둥이네 학교 대운동회날. 보통은 가을에 대운동회를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봄에 어린이날 기념이라고 대운동회를 한다고 했다. 추측컨대 가을에 운동회를 주관하는 업체를 구하는 것일 어려웠을까 싶기도 했다. 학부모공개수업도 못 갔는데 어쩐지 운동회는 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안 가려고 했는데 오전에 잠깐이라도 가서 보고 오고 오후에는 수업을 할 계획이었다. 그랬더니 교감 선생님은 강사를 구했으니 그냥 하루를 다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모처럼 강사 선생님을 모셨는데 서너 시간만 수업을 하고 다시 가야 하면 좀 아쉬울 것 같긴 했다. 우리 반 나 없이 괜찮을까 싶어 매우 걱정이 되었지만 요새 막둥이랑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래도 한 번은 가야지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막둥이네 학교 대운동회를 가게 되었다. 지난번 글에도 썼지만 나는 운동장에 나가는 것이 싫다. 다른 것보다도 일단 운동장 흙먼지가 견디기가 참 어렵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한 편이라 잠깐은 버티지만 장시간은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참 꽃가루가 날아다니는 계절이니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눈물과 콧물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꼈어도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냥 보기만 하는 것도 나에겐 도전인데 유독 이번 운동회는 학부모 참여도가 높았다. 엄마를 찾아온 막둥이 뒤에 서서 같이 줄다리기를 무려 두 번이나 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정신이 혼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12시가 다 되어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재빨리 교문을 나섰다. 운동장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밥을 대충 먹고 잠깐 누웠다. 20분간 선잠을 자고 다시 학교로 향한다. 엄마가 왔다고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그냥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억지로 발걸음을 옮겨서 앉아 있는데 저 대화가 들린 것이다! 정말 지켜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막둥이 친구 엄마들이 하나씩 보인다. 우리는 모두 다 다자녀 맘들이었다. "언니!"하고 부르는 ㅈㅎ이 엄마는 아들만 넷, "어머, 오늘 학교 안 갔나?"하고 물어보는 ㅈㅇ이 엄마는 딸 둘에 아들 하나이다. 모두 어린이집 시절 만났는데 다둥이 가정의 셋째, 막내로 자란 남자아이 셋이 모였으니 아주 그냥 재미가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 엄마들이 오전에는 안 왔다는 것이다!!! "어휴 덥고 힘든데 왜 와." "막내가 계주 선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지!" 아... 아... 아....???!!!! 그렇다. 다자녀의 셋째 정도 되면 사실 이제 웬만한 참관 수업이나 운동회 같은 학교 행사는 그냥 의례적으로 또 오는 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막둥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어도 '그래 오길 잘했지.' 했던 감동은 이미 뜨거운 햇빛 아래 자글자글 녹아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이 오전에는 그냥 스킵했다는 말에 솔직히 나도 그냥 시원한 학교에 있다가 맛있는 학교 급식을 먹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이 쑤우욱 올라왔다. 뭐, 그래도 잘했다. 엄마 왔다고 신이 나 있는 아이 손 붙잡고 같이 집에 오는 것도, 특별히 1+1으로 산 음료수도 혼자서 다 먹는 것도, 형제들과 나누지 않고 엄마를 독차지하는 잠깐의 시간도 오늘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정말 가끔씩은 학부모 노릇하기 참 어려울 때가 있다. 왜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못 해 먹겠다 하지 않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올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심정을 나는 안다. 오늘 내가 잘한 것은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본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한 켠에 엄마가 같이 있었다는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흐르면 엄마가 왔었는지 안 왔었는지는 희미해질 수 있다. 기억조차 안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하루하루 한 번 한 번이 모여서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 만들어지는 거겠지. 그래서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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