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y 13. 2024

이 책은 읽는 것이 나을까 아닐까

Verity by 콜린 후버

영어 원서 읽기 모임을 두 개를 하고 있다. 하나는 내가 오래전부터 이끌어 온 슬로우 리딩 모임이다. 주로 문학을 읽지만 비문학도 같이 읽는다. 또 하나는 올해 새로 시작한 모임으로 영어로 책을 각자 읽고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으로 만나 영어로 토론을 한다. 두 번째 책으로 읽게 된 것은 Verity. 콜린 후버라는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제목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저자 이름도 어쩐지 낯선데, 이번 달 책이니 주문해서 읽어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영어 원서 읽기의 약간 권태기에 빠져 있었다. 읽히기는 읽히는데 예전처럼 미친 듯이 빠져 읽는 그런 즐거움은 좀 덜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에 약간은 권태기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재미있으나 예전처럼 걸어 다니면서도 읽고 밥 먹으면서도 읽고 청소하다가도 읽고 하는 그런 몰입감을 느끼면서 읽지는 못했다. 약간은 의무감으로, 그리고 약간은 거기서 얻는 좋은 고양감으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 좋고 읽고 나서 감동도 분명히 받는데 어린 시절, 그러니까 이십 대까지 정신없이 책이 주는 기쁨과 감동에 빠지기에는 좀 거만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정신없이 읽었던 책이 뭐였더라... 내 이름은 빨강이었나, 아니면 단테 클럽이었나. 그리고 요새 다시 조금 더 열심히 읽게 만든 책이 이금이 작가의 책들이었다.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 다시 잡기 시작하니 너무나 좋았던. 한글책들을 같이 읽기 시작하면서 알았다. 나는 굶주렸구나. 그동안 영어로 원서의 감동을 느끼는 것은 좋았지만 그 목적에 가리어져 또 언어의 장벽 없이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감동에서 멀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고전적인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끼려고 하다 보니 가끔은 통속적인 소설이 주는 휘몰아치는 재미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약간은 시드니 셸던 같은 느낌도 나는 이 책을 다 완독 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요새 영어 책을 읽으면서도 예전에 한글책을 읽을 때처럼 속독감을 느끼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한 단계를 넘게 해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너무 궁금하고 너무 무서워서 다음 장을 안 읽고는 못 배기게 하고 다음 문장을 빨리 읽게 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을 때를 제외하고 오랜만에 받았다. 아, 생각해 보니 비교적 최근에 읽은 가재가 노래하는 곳 원서도 정말 좋았다.) 그러면서도 역시 작가의 스타일 상 같은 단어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니 자동적으로 익혀지는 부분도 있었다. 이 작가는 brush past라는 구절을 많이 사용했다. 누군가를 스쳐 지나간다는 뜻이다. rummage, manipulate 이런 단어도 종종 나온다.


고상하고 한 단계 높은 감동을 원하신다면, 글세 정말로 읽어보시라고 추천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하여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한 가지 시선을 던질 수는 있겠다. 일련의 사건이 펼쳐졌고, 사건은 일관 되게 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과연. 그것은 진실일까 아닐까.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마저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 조차 어떤 의미일까 하고.


읽다가 너무 궁금해서 한글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하고 리뷰를 찾아보다가 첫 번째 리뷰에 스포일러를 당하고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더 이상 리뷰를 찾아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책은 정말 손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완전 불량식품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입에 자극적인 책을 읽었으니 좀 덜 자극적인 책도 읽을 준비는 충분히 된 것 같다. 다음 책은 노인과 바다라니.... 아아.... 나는 헤밍웨이 정말 안 좋아하는데, 그것도 원서로 읽어야 한다니..... 그 고기 잡는 여정을 한 달간 해야 하는데 잘해 보자고 애써 다짐 중이다. 하하.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그 언젠가를 혼자서는 안 할 숙제처럼 미뤄둔 책이니 이런 기회가 아님 안 읽을 것도 안다.


아무튼. 마지막에 저자의 감사노트를 보다가 좀 눈에 띄는 부분이 들어왔다. 엄마에게 길게 감사의 편지를 썼더라. 언제나 격려해 주고 이해해 주고 읽고 평을 해 주는. 이렇게 적나라한 묘사를 엄마가 그냥 가감 없이 읽고 평을 해 준단 말이야?? 우리 엄마라면 기절하면서 이런 글을 어떻게 쓰냐고 난리를 치실 텐데, 솔직히 그 점이 부러웠다. 그리고 거의 끝 쪽에 아마도 아들들인 것 같은데 Levi, Cale, and Beckham. I love you all so much. You make me proud every day. Please don't read this book. 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아들이 세 명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긴 하다. 내가 요새 들고 다니는 책을 우리 반 아이들이 눈여겨봤다가 빌려 읽곤 하던데, 이 책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을 슬쩍 돌려 막았다. 내일부터는 안녕 우주, Hello Universe를 읽을 예정이니 괜찮을 것이다.




결론은, 영어를 향상하는 빠른 즐거움을 원하시면 Verity 강추합니다! verity는 진실이라는 단어인데 주인공 이름이기도 해요. 과연 어떤 진실을 그녀는 가지고 있는 것인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리고 이왕 읽으실 거면 한글 말고 영어로 추천드려요! One of us is lying 같은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파도타기와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