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가 야구를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작년 오월, 우연히 체험반 공고를 보고 그냥 한 번 보낸 본 것이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게 될 줄은 정말 우리 집 식구 그 누구도 몰랐다.
셋째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참 잘했다. 조용한 성격인데 몸이 빠르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이집 엄마들이 그냥 시켜보자고 한 축구반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결국 선수반에까지 가서 동작구 대회 1등으로 서울시 대회에 진출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수상도 많이 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잠정적으로 그만두었다. 축구를 하면서도 아이는 축구보다는 야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서 야구를 하니."
유소년 야구단을 알아봤는데 집에서는 너무 멀어서 도저히 태워다 주고 데려올 수가 없었다. 학교 야구부는 생각도 못했다.
야구야구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위해 방과후학교 티볼이라도 신청을 했지만 인원수 미달로 번번이 폐강....
그러다가 체험반 공고를 보고 그럼 그 소원인 야구를 구경이라도 시켜주자! 했는데.... 아이가 야구를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열심히 책을 읽는데 어머니들이 한 분 두 분...오시더니 조용조용 설명해 주신다. 아... 그렇군요. 딱히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듣고만 있었다.
체험반에 온 아이들은 물론 다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고 캐치볼 좀 했다는 아이들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우리 아들은 좀 눈에 띄긴 했다. (도치맘 아닙니다.) 그리고.... 좀 더 해 보면 좋겠다는 감독님 제의도 들어오는데 문제는 평일 야구 체험반을 하기엔 이 아이를 거기까지 데려다줄 길이 없었다. 한 시간씩 외출을 쓰고 나와서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그 학교로 가는 연습을 2주 정도 하니까 이제는 혼자서 갈 수 있겠다고 했다. 핸드폰도 사 주고 버스 카드도 사 주고 그렇게 아이는 혼자서 가기 시작했다.
솔직히 야구가 그렇게 좋을까??? 땡볕에서 서너 시간씩 서 있어야 하고 낯을 가리는 아이가 거기서 혼자 야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상상이 가질 않는데 아이는 그렇게 다니더니 한 달을 채우기도 전에 "엄마, 나 전학 가야겠어요."라고 말을 했다.
1학기를 마치던 날 전학 수속을 하고 한국소프트볼야구협회에 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학생선수가 되었다.
야구라니... 야구라니..... 선수라니..... 선수라니...... 몸치들로 가득한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기도 한 건가...???? 야구는 돈 많이 든다는데 네 아이를 키우는 우리 집에서 이게 가능한 소리일까???? 일단은 전임코치제라서 다행이었다. 구마다 교육청에서 지원을 해 주는 전임코치제는 학부모들의 부담이 훨씬 적게 든다. 심지어 회비도 걷을 수 없어서 그때 그때 쓴 만큼 나눠서 내는 시스템이다.
아이에게 야구를 시켜도 좋겠다고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워킹맘이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집에 오면 두세 시간을 혼자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몰래몰래 게임을 하다 걸리기도 하고 TV를 보다가 걸리기도 하고.... 차라리 건강하게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이 있다.
그리고 아이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투수 연습을 하는 아이를 지켜본 선배 아버님의 권고로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듯 야구부 훈련 외에도 부족한 부분은 사적인 레슨을 받기도 한다. 앞서 글에서 밝힌 블로그 광고글 업로드의 원인 중 하나는 셋째의 야구 관련 비용도 꽤 컸다.
좋은 코치님께 좀 더 다듬어진 레슨을 받으면서 아이의 볼의 정확도와 구속은 올라갔고 5학년인데 선배 투수 형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가끔 선발로 서기도 하면서 최소 두 경기에 한 번은 던지고 있다. 지난 첫 정식 경기에서는 2이닝 동안 2 실점을 하고 스크라이크 아웃을 몇 번을 시키면서 꽤 잘했다.
늘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은 아이가 무참하게 깨진 날이었다. 매번 경기에 따라가기엔 다른 세 아이도 있고 힘이 부쳐서 가끔씩 차량 지원을 하는데 오늘은 작정하고 따라간 날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선취점으로 시작한 경기는 곧이어 상대 학교가 1 득점.
2이닝은 무득점. 상대는 1 득점. 1:2
그리고 3이닝에서 1번 타자 2번 타자 모두 안타를 쳐서 2루씩 진루를 했고 3번 타자인 우리 셋째도 안타를 쳐서 2루까지 가서 결국 3 득점을 했다. 우리 학교는 축제 분위기였다.
4:2
사실 6학년의 숫자가 타학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선수 전원이 모두 6학년인 상대 학교와 비교하면 턱없이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 정말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고 상대학교가 다시 득점하여 4:4
다음 이닝에 우리 아이가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보면서 드는 생각이.... 여기서 잘해야 본전이겠구나... 실점하면 그대로 다 우리 아이가 받겠구나... 보통 1이닝은 좀 적응하는 시간이 걸리던데 어쩌려나...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어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기도 하고 볼 넷과 안타를 허용하면서 만루가 되었는데 다음 타자는 그 학교에서 예전부터 유명한 6학년 형이었다. 홈런을 가끔 치기도 하는 그 아이는 계속 끊임없이 노리더니 결국 다섯 번째 공에서 홈런을 때렸다. 주자 네 명이 차례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참 착잡했다.
우리 학교 아이들도 마음이 흔들려서 수비 실책이 나오고 결국 6 실점을 하면서 겨우겨우 마무리했다. "투수는 맞으면서 크는 거야."라고 다른 아버님이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다. "4회 초까지는 꿈꾸는 것 같았다."라는 다른 아버님의 말씀도 정말 격하게 공감한다. 우리가 열세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올해 시작된 정식 경기에서 지금까지 계속 졌기 때문에 오늘 흐름이 좋았던 경기에서 우리 셋째가 만든 대량 실점의 충격은 좀 많이 컸다. 그리고 다음 이닝에서 다른 투수가 나왔는데 1 실점을 허락하면서 결국 콜드게임으로 경기는 마무리.
화장실에서 나오니 다른 아이가 "ㅇㅇ때문에 졌다."라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진짜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이는 가만히 있었다.
"맞을 만한 아이한테 맞았다고 생각하세요. 잘했다고 격려해 주시고요."
졸업한 선배 아버님이 전화로 말씀해 주셨다.
내가 마음이 아프다 한다 한 들.... 너만큼 아프겠니. 상대 응원석의 환호와 우리 응원석의 침묵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네 마음을 내가 대신 져 줄 수 없어서 발만 동동거린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네가 마운드에 올라서 공을 던진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공을 계속 던지기를 응원한다. 흔들릴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빠르게 잡아내고 네 갈 길을 가고 그렇게 끝까지 그 이닝을 책임지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역시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목적지를 향해서 끝까지 걸어갈 테니까. 비록 바람이 불고 몸이 휘청일지라도 멈추지 않을 테니까.